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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3
[필리핀 여행] 땅속 환상세계 수마깅 원시동굴 탐방
동남아 > 필리핀
2014-06-13~2014-06-27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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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다

땅속 환상 세계, 수마깅 원시동굴 탐방


땅속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오래된 궁금증은 지하 동굴 탐방으로 어느 정도 풀렸다. 우리가 가장 쉽게 땅속을 들어가 볼 수 있는 방법은 동굴 탐방이다. 관광지로 개발된 대부분의 동굴들은 탐방로를 만들어 안전하게 둘러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위적인 개발과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죽은 동굴이 되어버렸다. 이런 동굴 탐방은 박물관에서 박제된 동식물을 보는 느낌과 비슷해 감동이 적다. 나는 살아있는 자연 상태의 동굴을 맨 몸으로 탐방하고 싶었다. 
필리핀 루손 섬 중북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사가다. 이곳에서 살아있는 원시동굴 탐방에 나섰다. “수마깅 동굴 탐방은 바닥을 기고 절벽을 뛰어내리고, 때로는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을 건너야 한다.”며 가이드가 겁을 준다. 험준한 석회암 산자락에 위치한 수마깅 동굴 입구는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관문 같다. 입구에서 가이드 몇이 랜턴에 불을 켜고 있다. 건전지나 부탄  가스를 사용하는 랜턴이 아니라, 버너처럼 석유와 압축공기를 이용해 불을 밝히는 랜턴이다.

 

 

 

자연과 하나가 된 원시 동굴 탐방

동굴 탐방은 반드시 사가다 동굴협회 소속의 가이드를 동반해야 하는데, 탐방객 4명당 가이드 1명을 고용해야 한다. 필리핀 대부분의 오지 여행지에서는 그 지역 가이드를 반드시 고용해야 한다. 이러한 공정여행은 그 지역의 가이드를 이용함으로써 그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효과가 있다.
동굴 전문 가이드가 든 랜턴 불빛을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동굴 내부는 원시 자연 상태 그대로다.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으며, 중간 중간에 밧줄을 매어 놓은 것이 전부다. 탐방객들의 복장도 여행자의 옷차림 그대로다. 안전모도, 안전화도 없이 맨 몸으로 살아있는 동굴을 탐방하는 것이다. 아직 인공적인 개발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하루 탐방객도 제한되어 있어 아직까지 원시의 동굴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아래로 내려가니 신비로운 땅속 세계가 펼쳐진다. 500미터 쯤 내려왔을까. 가이드가 신발을 벗어라 이야기한다. 등산화가 불편하던 차였는데, 동굴 바닥이 생각보다 미끄럽지 않아서 맨 발로 걷는 것이 훨씬 편하다. 조심조심, 네 발로 걷는 것은 기본, 때로는 수직 절벽은 뛰어내려야하고, 허리까지 물이 차오르는 웅덩이를 건너야 한다. 맨손과 맨발에 느껴지는 시원하고 까끌까끌한 바위의 감촉이 좋고, 물웅덩이를 지날 때면 짜릿한 스릴이 느껴진다. 원시의 지하세계를 온 몸으로 느끼며 이동하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동굴을 약 1킬로미터 정도 내려오자 일행들은 여유가 생긴듯하다. 랜턴 불빛으로 그림자놀이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고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처음의 두려움도 사라지고, 어둠속 동굴 탐방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탓이리라. 이곳 지하세계는 환상적이다. 가이드가 랜턴을 비추니 캄캄한 동굴 속에 거대한 석회암 커튼이 펼쳐진다. 이른바 ‘왕의 커튼’, 거대한 석회암 기둥이 마치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고 그 아래 둥근 바위를 따라 쉼 없이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이를 지질학 용어로 석주(石柱)와 종유벽(鐘乳壁)이라 한다. 물에 녹아 침전된 광물 결정이 몇 만 년의 시간동안 쌓이고 쌓여서 기둥모양으로 만들어진 석주, 그 아래에는 마치 종 모양으로 둥글게 형성된 종유벽이 신비로운 지하세계를 연출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다양한 동굴 생성물들이 시선을 이끈다. 석회암 바위가 물개, 강아지, 두더지 모양을 하고 있는데, 랜턴의 빛과 그림자가 신기한 지하세계를 연출한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니 바위가 계단식 논처럼 형성되어 있다. 여기서 가까운 바나웨에서 본 라이스 테라스 같다. 인공적으로 둑을 쌓아 만든 듯한 작은 연못들이 층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석회화단구(石灰華段丘)라 부른다. 이 석회화단구는 탄산칼슘을 많이 머금은 물이 흐르면서, 탄산칼슘을 침전시켜 만들어진 반원형의 지형으로 높이를 달리하면서 계단 모양으로 발달한다. 지하 세계에 꾸며 놓은 조각 궁전을 보는듯하다. 자연이 만든 이들 조각품은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극한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 가장 위대한 스승은 자연임을 새삼 깨닫는다.

 

 

 

 

 

 

지금도 살아서 성장하는 석회암 동굴

가이드가 비춰주는 랜턴 불빛에 지하 궁전의 조각품들을 드러나고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빛이 닿지 않는 곳은 극한의 어둠세계다. 혹 ‘가이드가 랜턴을 떨어트려 불이 꺼지기라도 하면 그 극한의 공포는 어찌할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소름이 돋는다. 실제로 올라가면서 가이드 한 명이 넘어지면서 랜턴이 고장 나 극한의 공포를 짧게나마 느껴보기도 했다. 다행히 다른 가이드의 도움으로 지상 세계로 올라 올 수 있었지만, 빛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체험한 시간이었다.


이 지하 세계에 조각 궁전을 꾸민 주인공은 누구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물이다. 어두운 땅속에서 고요히 흐르기만 하는 물이 어떻게 이런 거대한 동굴을 만들고 천태만상의 아름다운 조각품을 만들 수 있을까. 석회암의 주성분은 탄산칼슘으로 탄산이 함유된 물과 접하면 녹아버린다. 즉 석회암층에 발달한 작은 틈을 따라 물이 스며들면, 용식 작용에 의해 1차적으로 큰 홈이 파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고 물길이 생긴다. 그리고 거대한 동굴로 발전하고 다양한 동굴 생성물을 만들게 된다.


이렇게 동굴이 만들어지고 나면 동굴 안에서 흐르는 물은 석회암 성분이 과포화상태가 되고 탄산칼슘이 광물의 결정으로 침전되면서 다양한 형상을 만들게 된다. 침전된 광물 결정을 포함한 물이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면서 고드름처럼 자라 종유석이 되고,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이 쌓이듯 자라 석순이 된다. 이 종유석과 석순이 연결되어 석주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바위벽을 타고 흘러내려 폭포와 같은 형상의 종유벽을 만드는 것이다. 또 커튼 형상으로, 눈꽃 같은 하얀 석화(石花), 보석을 닮은 동굴진주, 계단식 논 같은 석회화단구 등의 동굴 생성물을 만든다.

 

 

 

다행인 것은 이 동굴은 여전히 살아있었다는 점이다.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은 물인데, 이 물이 동굴을 확장시키고 여러 동굴생성물을 만들고 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엄청나게 느린 시간으로 말이다. 어떤 이유로 물이 흐르지 않으면 동굴은 그대로 정지해버린다. 종유석은 1년에 약 0.2mm밖에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길이 1m 정도로 자라려면 무려 5만 5천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동굴 탐방을 할 때 미미한 동굴생성물이라도 훼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제 더 나아갈 수 없는 곳까지 왔다. 가이드가 랜턴으로 동굴 한 쪽 벽을 비춰준다. 밤하늘에 별같이 반짝이는 수많은 화석들, 수백 만 년 전에 바다에 살았던 원시어류, 고둥, 소라의 화석이 지천이다. 석회암은 따뜻한 바다 속의 칼슘 성분이 쌓여서 만들어진 암석이다.고생대 당시 따뜻한 바다에서 헤엄쳤던 해양 생물들이 칼슘성분과 함께 굳어져 화석이 되었고, 다시 물에 의한 용식 작용으로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지구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여러 동굴을 둘러봤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고생대의 바다가 펼쳐지는 장면을 본 적은 없다. 엄청난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전율이 느껴진다.  

 

왕복 2킬로미터에 달하는 수마깅 동굴 탐방의 끝자락, 이제 다시 올라가야 할 시간이다. 처음 내려올 때는 다들 긴장하고 겁도 먹었는데 한결 수월하게 올라간다. 희미하게 보이던 빛이 점점 밝아지더니 약 4시간에 걸친 원시의 동굴 탐방이 끝났다. 밖으로 나오자 찬란한 빛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태초의 암흑세계가 이런 세계가 아니었을까.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 극한의 어둠이 주는 공포가 어떤 것인지, 온 몸으로 체험한 수마깅 동굴 탐방이었다. 그것도 살아있는 원시의 동굴을 오로지 맨몸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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