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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7
슬라브인의 땅, 발칸 - 알프스의 진주 블레드 호수 속 블레드섬
유럽 > 슬로베니아
2015-05-06~2015-05-08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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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반

슬라브인의 땅, 발칸을 가다



2. 알프스의 진주 블레드 호수 속 블레드섬

글,사진 카라반



 






 

알프스의 진주.

블레드 호수를 일컫는 말이다.

별명에 걸맞는 아름다움과 멋을 지닌 블레드 호수는 슬로베니아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다.

슬로베니아 북서부의 어퍼카르니올라 주에 속해 있으며 사방이 알프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으로 호수는 언제나 잔잔하고 물이 맑다.

블레드 호수의 한 가운데에는 블레드 섬이 있고, 섬 안에는 15세기에 지어진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다.

호수에서 바라다 보이는 붉은 지붕의 블레드 성 또한 이 곳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호수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려는 휴양객들과 트리글라브 국립 공원(Triglav National Park)에서 트레킹과 하이킹을 즐기려는 활동가들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 곳을 잠시 들여다본다.






 




 



블레드 호수는 산으로 둘러 싸인 빙하호()인데, 알프스에서 유일하게 수영이 가능한 호수다.

알프스의 호수들은 만년설이 녹아서 만들어진 만큼 그 맑은 물빛이 큰 자랑이지만 대부분은 그저 눈으로만 감상해야 한다.

이유는 수온(水溫) 때문인데, 알프스 산맥의 얼음이 녹은 물인데다가 비교적 높은 고도에 위치한 호수들은 물의 온도가 무척이나 차가워서 함부로 수영을 하다가는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젊은 배낭여행객들이 알프스의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간혹 들려오는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블레드 호수는 여름이면 수영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줄리앙 알프스 산맥이 병풍처럼 막아주는 덕분에 블레드 호수의 온도가 수영을 하기에 적절하게 만들어진다고 한다.

슬로베니아를 가로지르는 줄리앙 알프스가 베풀어주는 은혜와도 같은 축복이다.



때문에 이 호수는 잔잔하고 고요해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매우 활동적인 액티비티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 여름 휴가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가까운 트리글라브 국립공원을 찾는 트레킹족, 하이킹족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 되어 주기도 하고, 세계 3대 조정경기가 열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내가 여행을 갔던 날도 조정경기 행사가 있었다. 이틀 뒤까지 3일동안 열린다고 했는데, 내가 갔던 때는 아직 연습 중이었는지 본격적인 레이스가 펼쳐지지는 않았지만, 번호표가 있는 각 레인에서 열심히 연습에 집중하는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을 다수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젊음이 조금 부럽다고 느껴졌다.



 









 









블레드 호수의 한 가운데에는 블레드 섬이 있다.

이 섬이 슬로베니아의 유일한 섬이라고 한다. 풋~ 살짝 웃음이 나왔다.

걸어서 10분이면 둘레를 한바퀴 돌만한 이 작은 땅을 일러 유일한 섬이라고 굳이 명명하는 이들의 재치(?)에 대한 예의랄까...

어쨋든 슬로베니아가 바다와 닿아 있는 해안선의 면적 자체가 무척이나 짧은 나라인 건 맞다. 


그리고, 그 유일한 작고 예쁜 섬은 블레드 사람들과 여행객들의 발길을 끄는 무언가를 품고 있다.





호숫가에서 블레드 섬엘 가기 위해서는 플레트나라고 부르는 나무로 만든 일종의 나룻배를 타야한다.

플레트나는 호숫가와 섬을 오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으로서 철저한 관리와 통제를 받는다.

호수의 수질 오염을 막기 위해 무동력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룻배의 수를 28대로 한정해서 철저히 지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는 이미 300여년전부터 지켜 내려오는 철칙과도 같은 규칙이며, 뱃사공 역시 거의 대물림 형태로 자격을 부여받는다고 한다.


나는 외국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이런 별 것 아닌 철칙에 감동할 때가 종종 있는데, 지금 이 순간도 그렇다.

이 규칙을 그렇게나 오래도록 고집스럽게 지켜온 이들의 정신이 한 없이 부럽고도 대단하다.


이런 규칙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선기능을 발휘한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자연보호는 말 할 것도 없고, 서비스의 공급인원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지나친 과다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여행지의 서비스 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공급자들은 적절한 수입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업을 통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어 고객들에 대한 응대가 자연스럽게 친절할 수 있다.

이 곳도, 블레드 호수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거의가 블레드 섬을 찾아가므로 28대의 플레트나는 언제나 성황이다. 




 






 








 

플레트나 탑승비용은 편도 12유로. 조금 비싼 편이다.





배를 타면 약 10분 정도 노를 저어가는데, 내가 탔던 배의 사공은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셨다. 연세가 무려 83세.

그 연세에도 팔뚝에는 힘이 넘쳤는데, 역시나 플레트나 사공으로서의 자부심이 상당해 보였다. 아들도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가능하다면 손자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듯 한데 손자의 마음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참고로, 플레트나 사공은 여자는 자격이 없다. 반드시 남자만이 가능하다. ㅜㅜ






배를 타고 점점 다가가면서, 아름다운 섬의 모습이 선명해진다.


 







 



섬에 도착해서 배를 선착장에 매어두고 나면,




섬에서는 40분 정도의 시간을 주고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라고 하는데, 좀 더 여유있게 머물고 싶다면 티켓을 편도로 사는 것이 더 좋다. 왕복티켓을 사고 돌아올 때는 다른 배편을 이용해도 된다고도 하는데 정확한 확인은 하지 못했다. 

 











섬에 내리자마자 아름답지만 까마득한 계단이 먼저 나를 맞이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99계단이다.

설악산 울산바위의 108계단보다는 오르기는 쉽지만, 어떤 남자들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섬에는 15세기에 지어진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는데, 이 곳은 종종 결혼식 장소로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식날 신랑이 신부를 안고 이 99개의 계단을 한번도 쉬지 않고 오르면 평생 행복하게 해로한다는 전설인지 풍습인지가 전해지고 있다.

아름다운 신부를 아내로 맞이하는 운 좋은 신랑들에게 그깟 99계단쯤 별 것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가 이 고장의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서 살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평생의 행복을 위해 수고하는 신랑에 대한 배려일까? 안겨 있는 신부는 그 동안 좋아해서도, 웃어도, 말을 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신부가 말이라도 한마디 하거나 웃기라도 하면 신부를 안은 신랑은 좀 더 힘들어지고 곤란해질 것 같긴 하다.







아름답지만 누군가에게 조금은 잔인한(?) 계단을 다 오르면 왼쪽으로는 카페와 기념품 판매를 겸하는 예쁜 건물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바로 그 성모 마리아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15세기에 지어진 이 성당에는 유명한 소원의 종이 있는데, 그 유래는 이렇다.


1500년 전쯤 이 곳의 영주는 크레이그라는 사람이었는데, 폭정을 일삼는 사악한 영주였다.

어느 날,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게 그 영주가 홀연히 사라졌고, 영주의 젊은 과부인 클록세나가 새로운 영주가 되었다.

남편을 닮아 사악한 정치를 펼쳤던 그녀는 사라진 남편의 무운을 빌기 위해 커다란 종을 만들었는데, 그 종을 이 곳에 매달려고 호수를 건널 때마다 잔잔했던 호수에서는 풍랑이 일어 그녀가 만든 종과 사공은 모두 호수에 빠져버리고, 사공은 죽고 만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로마로 가서 수녀가 되었다고 한다. 훗 날, 로마 교황청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마음을 기려 이 성당에 종을 달아주었다.


신은 백성을 사랑하지 않고 폭정을 휘두르는 사악한 자의 소원은 들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속세를 떠난 후에야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을 보면...

그렇지만 좀 더 세속적인 시각에서 이 이야기를 해부해 본다면, 그녀가 로마로 가서 수녀원에 몸을 의탁할 때 아마도 상당한 액수를 교황청에 기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종은 그에 대한 보답차원의 성의표시 정도...

그저 변방의 일개 영주의 미망인에 지나지 않는 사람의 가슴 아픈 사연까지 속속들이 들어줄 만큼 한가한 로마 교황청이 아니었을 것이기에...








 







 


 






 


성당 안에는 지금도 그 종이 있어 소원의 종으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이 이 종을 울리고 있다.

그리고, 성당 내부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만 들어갈 수 있으므로... 결국 600년전 그 때처럼, 우리도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정한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슬쩍 스쳤다.

나는 역시 언제나 생각이 참 불손하다.


성당의 내부 예배당 한가운데에 종을 울리는 긴 줄이 달려 있는데, 이 줄을 당기면 외부 종탑에 있는 종이 흔들리며 종소리를 내는 특이한 구조다. 그래서 예배당 안에서는 종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므로 줄을 당기고 나서 아주 조용히 그 소리를 찾아야 한다. 자연스럽게 성당 내부에서는 정숙을 유지하게 된다.

종소리를 모두 3번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이 성당의 종소리는 거의 하루종일 울려진다. 수 많은 사람들의 수 많은 소원을 들어주느라 종이 정말 바쁘다.

나는 남들이 울리는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묻어가기 소원을 빌었다. 종을 울리는 수고조차 하지 않았기에 신이 내 소원을 저리 멀리 치워놓을 거라 예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짝 숟가락을 얹어보는 얍삽함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성당 밖에서 들려오는 맑은 종소리는 어쨋든 그 자체로 즐거움이어서 종을 울려 소원을 비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 섬은 원래 슬라브인의 신화에 등장하는 지바(Živa)라는 사랑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이 기거한다고 믿어져 왔다고 하는데, 신성한 성지였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고 새로운 종교가 유입이 되면서 성당이 세워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평생의 사랑을 서약하는 결혼식 장소로 애용되고 있고,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니... 지바 여신 덕에 여전히 세상의 사랑과 풍요가 만들어지고 있는 듯도 하다.




 














 




성당을 나와 섬 주변을 둘러 산책을 하는데, 물오리들이 한가롭게 햇볕을 쬐고 있다. 귀여운 녀석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여가며 가까이 다가간다. 아무리 조용히 하려 해도 셔터소리는 감출 수가 없으니 예민한 녀석들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런데... 한 녀석이 아주 능청스럽다.

분명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똑바로 쳐다보기까지 하면서도 꼼짝을 하지 않는다. 네깟 관광객 때문에 내 기분 좋은 일광욕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냐며 오히려 빨리 갈 길이나 가라고 귀찮아 하는 것 같다. 그래, 이 곳은 주인은 내가 아니라 너인 것을... 네가 달아나야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닌 것을... 네가 옳다. 
























 





















 


내 몇걸음 뒤에서 역시나 산책을 즐기던 여행객들도 이 무덤덤한 오리에게 매료되었나 보다.





무뚝뚝한 물오리에게 뭔가 한 수 배운 후 조금 더 걸으니 이 섬여행의 시작점인 선착장과 계단이 다시 나타난다. 참 작고 아담한 섬이다.



계단 중간에 잠시 앉아서 잔잔한 호수를 그저 바라보노라니 따스한 5월 한낮의 햇살이 부족함 없이 내려앉는 것이 보인다. 

배에서 내릴 때 북적대던 사람들은 아직 모두 소원을 빌고 있는지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다. 계단을 다시 천천히 오르면서 처음 올라갈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평화로움에 함뿍 젖어든다.
















이 곳의 고요한 평화로움에 젖어든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닌 듯 하다.





























 



계단을 다시 올라 아까는 보지 못했던 기념품 가게 안도 기웃거리면서 느긋하게 경치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여행자들을 데려가려고 플레트나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배를 타려고 계단을 내려와보니 조금 전 콧대높은 오리를 사진으로 담던 또 다른 여행자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데 괜히 반가워서 말을 걸었다. 

사진을 좀 찍어도 괜찮을지를 물었더니 흔쾌히 웃어준다. 





나를 호숫가로 태워다 줄 할아버지도 이미 와서 기다리고 계시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노년을 보내고 계시는 플레트나 뱃사공 할아버지가 안전하게 저어주는 배를 타고 섬을 떠나며, 다시 한 번 카메라에 섬의 뒷모습을 담는다.

살짝 헤어지기 싫다는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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