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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0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 (前事不忘后事之师,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이 후대의 가르침이 된다.)
중국 > 흑룡강성
2015-09-01~2015-09-01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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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최여사

 

 

안중근 의사 기념관

 


 

1909년, 조선통감부의 통감 이토히로부미를 향해 세 발의 권총을 쏘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신 안중근 선생님.그 후 뤼순 감옥에서 고문을 받다가 돌아가신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읽으면, 눈시울이 붉어지며 마음이 뜨거워진다. 나라를 빼앗긴 그 때, 우리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목숨 걸고 애쓰신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존재하는건데.... 그 분들이 지켜주신 대한민국을 우리는 어이없이 찾아온 광복의 과정에서너무도 쉽게 친일파들을 숙청하지 못하고 일본의 앞잡이 같은 놈들에게 다시 정권을 내주었다.  안중근 선생님의 유해를 찾기 위해 김구 선생님이 그렇게 애쓰셨지만, 김구 선생님도 돌아가시고... 일제강점기 시대에 조국을 향해 애쓰셨던 김구 선생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안중근 선생님은 원래 국민들의 계몽을 위해 학교도 세우시고, 교육에 힘쓰신 분이다. 하지만 계몽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본인이 직접 의병활동에 나선다.

 










이토히로부미.

 


 

 

한국에서는 을사조약과 관련해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주도한 인물로, 일반적인 일본인의 시각에서는 초기 근대 정치인의 한사람이자 일본의 근대화에 있어 기여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된다.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1909년 6월 14일 통감직을 사퇴하고 추밀원 의장에 임명됐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대한의군 참모 중장(大韓義軍 參謨 中將) 안중근에게 피격당하여 사망하였다. 사후 일본 천황으로부터 충정군(忠貞君)에 추봉되었고, 대한제국 순종 황제는 그에게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위키백과

 








이토히로부미와 태자 영친왕

 


 









1905년, 우리나라는 5명의 친일파에 의해 너무도 쉽게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게 내주었다.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이완용은 그 후에도 자신의 친일에 대해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남겨왔다. 우리가 무관심한 정치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가 우두머리에 올라서느냐에 따라 나라가 망할 수도 살 수도 있다. 이완용 개인으로만 본다면, 그는 똑똑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어떠한 과정도 견디는 그런 처세꾼이었다. 그 당시 이완용과 함께 과거급제 동기였던 서재필이 독립일보를 창간할 때, 이완용은 그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을사조약을 기점으로 그는 일본의 앞잡이가 될 것을 선택했다. 그에 필반하는 엄청난 부와 영예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개인의 영예를 위해서 그는 조국을 팔았고, 후에도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데 앞장섰다.

 


 












안중근 선생님은 이토히루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만반의 준비를 하여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할 계획을 세웠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향해 저격한 그 장소이다.








바로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심문을 받으면서도, 이토히로부미의 죄목을 열거하며, 굴복하지 않으셨다. 당시 감옥에서도 교도관들이 안중근 의사의 언변과 지혜를 보고 존경했다고 한다.








 



안중근 선생의 어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옷을 입고, 사형대에 선 안중근 선생님.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속 터지고 울분이 터진다. 현재 아시아의 판권과 세도는 근 100년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역사를 잊지 않고 반복해서 가르치고 있는 중국과, 근현대사를 수능 필수 과목으로도 지정해놓지 않은 한국, 그리고 새로운 교과서를 집필해가며 침략의 역사를 은폐한채 가르치고 있는 일본.

 


 

나부터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칠 것이다. 중국의 난징대학살 박물관에도, 731부대 박물관에도 아주 커다랗게 쓰여져있는 문구가 있다. 前事不忘后事之师(역사를 잊지 않는 것이 후대의 가르침이 된다.)중국인이 지난 100년간 일본과의 역사를 대하며 늘 강조하는 자세이다. 안중근 선생님,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前事不忘后事之师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이 후대의 가르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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