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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토리
2014-01-03
자양영당/제천의병전시관
대한민국 > 충청도
2013-01-13~2013-01-13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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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둘

 

자양영당/제천의병전시관

 

  

 

의병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제천,  제천봉양읍에는 제천의병의 창의지인 자양영당(충북 기념물 제37호)과 제천의병전시관이 있다.   자양영당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유중교(1821~1893)가 고종26년 (1889)에 자양 서사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그 자리에 세워진 제천의병전시관은 제천의병과 관련한 유물을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는 기념관이다.  제천의병기념탑과 자양서사, 숭의사, 성재거택, 의암거택으로 이뤄져있어 호국의병의 뜻을 기리며  호국 정신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이다. 

 

 

  

 

 


 
제천의병전시관

 

제천의병전시관은 제천의병과 관련한 유물을 류연수, 류성균 등 후손들로 부터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다.  제천의병사연표를 시작으로 당시 제천의병의 출범과 활약도, 제천의병의 시련, 제천의병과 운동, 의병에서 독립군으로 라는 테마와 함께  고서와 유품등 76종 251점을 전시하고 있다. 영상실과 자료검색을 통하여  숭고한 선비의 정신이 깃든 자양영당의 義를 느낄 수있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동판부조

 

 

 

 


 
▲제천의병사연표와 의병의 활약

 

제천의병사

청일전쟁후 일제는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개화를 빙자하여 단발까지 강요하였는데 이때 제천의 장담 마을에 모여 공부하던 선비들이 나라의 위기를 알고 의병항쟁의 길에 나섰다.  제천의병은 친일적인 지방관료들을 처단하며 한때 충주성까지 장악하여 전국의 의병을 선도하고 을미의병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의 투쟁은 아관파천 후에 내려진 해산명령에도 끊임없이 항쟁하였으며 근거지인 제천을 빼앗긴 후에는 양서지방으로 옮기면서까지 재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결국 압록강을 넘어 망명 후 의병은 일시적으로 해산하였다가 다시 유인석을 중심으로 해외 무장항쟁에 노력하였다. 그 후 일본의 군사적 강점과 국권 침탈이 강화되자 다시 주천과 단양에서 봉기하여 전국의 의병항쟁을 이끌어내었다.  제천의병은 한말의 대표적 의병부대로서 전국적인 의병항쟁을 매번 선도하였고 가장 오랫동안 저항하였으며 해외에서 전개된 독립전쟁노선의 선구를 이루었다.

 

 


 
▲구국을 위한 모임 밀랍인형

 

 

 

 

 

 

 



 
 

제천의병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한 의병들의 유품은 후손들의 기증으로 이뤄졌다. 

1996년 자양영당성역화사업 이전의 장담마을의 전경사진과   신광묵의 유문을 모은 "학습재잡저" 유인석 선생의 심의와 유품, 의병기록물, 의병들이 사용했던 무기들, 용패 등을 살펴볼 수있다. 

 

 

 

 

 

 
▲제천의병기념탑

 

제천의병기념탑은 제천의병이 한말 의병항쟁의 상징적 존재였음을 뜻하며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여 구국의 일념으로 목숨을 바친 제천의병의 숭고한 의병정신을 기리고  정신교육의  도장으로 삼고자 건립되었다.  중앙의 주탑은 의병이념을 상징하고 좌우는 민중운동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의병정신과 의병항쟁을 표현하였다. 

주탑 주변의 5개 석조물은 청풍명월 제천의 산과 계곡, 분지 등의 험준한 지형을 나타내고 의병활동의 역경과 감격적인 장면을 암시하고 있다.

 

 

 

 

 

 
▲성재 유중교선생 고택

 

자양영당과 제천의병전시관 사이에는 성재 유중교선생고택이 있는데 공사중이라 안으로 들어가보지 않았다. 

제천의병기념탑 뒤로 조금 올라가면 의암 유인석선생이 사시던 초가집도 볼 수있다. 

 

 


 

 

 


 

 

처음에 자양영당 이정표를 보면서 납골당정도로 이해를 하였다.  그런데 얼마나 무지하였는지 자양영당에 왔어야 깨닿게 되었다.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자양서사와 자양영당이 앞뒤를 두고 서있다. 자양서사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이항로 선생의 제자인 유중교선생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세운 서당이다.    자양영당은 습재 이소응과 화서학파 유림들에 의하여 1907년에  건립되었다. 건물 옆에는 자양영당묘정비가 세워져 있다. 

 

 

 

 


 
▲자양서사

 

자양서사는 고종 32년 (1895) 을미의병 당시 의암 유인석선생께서 모친상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구국의 일념으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유림들과 처변삼사(處變三事)를 논의 하던 곳이다또한. 처음 창주정사에서 자양서사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의병운동의 진원지가 되면서 이를 기리기 위해  뒤에 자양영당을 창건하였다. 자양서사 현판 좌우에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로  군자로서 널리 배우고, 예로서 요약한다면 역시 도에 위배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는 글이 적혀있다.

 

 

 

 

 

 

▲자양영당 

 

 자양영당은  고종32년(1895) 의암 유인석이 8도의 유림을 모아 창의의 비밀 결사를 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고종 44년(1907)에 유림들에 의해 주자, 송시열, 이항로, 유중교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후에 유인석, 이직신의 영정을 추봉하고 있다.   매년 후손과 유림들이 모여 제향을 지내고 있다.

 

 

 

 


 
▲장판각에 보관중인 화동강목 판목(충북 유형문화재 37호)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적 원동력 

 화동강목판목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중암 김평묵(1819-1891)과 성재 유중교 (1832-1893)가 중국 송, 원, 대의 사적과 고려의 사적을 합편한 판목이다. 이 판목은 가평 광악산과 평안도의 박달나무를 재질로 글은 유제원의 글씨이다.  목판은 2,620면이 소장되어 있다.  화동강목에 나타난 유교적인 위정척사사상은 휴일 의병운동과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숭의사

 

제천의병의 넋을 기리는 곳으로 사당 내부에는 호좌창의진의 깃발과 조선말 13도의군도총재 의암유선생휘하제현신위를 봉안하고  조선말 의암선생을 비롯하여 13도 의병의 넋을 기리고자 매년 10월 제천의병제 행사시 고유제를 지내고 있다. 

 

 

 


  

 


자양영당/제천의병전시관 (043-641-4811) 충북 제천시 봉양읍 자양영당길 17 (공전리 475 장담마을) 

 -관람시간: 09:30~18:00
- 가는길 : 서울-영동고속도로 - 남원주 IC - 중앙고속도로 - 제천IC - 충주방면(38번) - 봉양 - 원박교차로 - 박달재 LPC앞(좌회전) - 공전역방향으로(6km) -자양영당
                대전-중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감곡 IC - 제천방면(38번) - 백운 - 봉양 - 원박교차로 - 박달재 LPC앞(우회전) - 공전역 방향 

                으로  (6km) - 자양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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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런곳이 있군요..제천가면 함 들려봐야겠네요..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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