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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토리
2014-02-10
7번국도여행, 감은사지
대한민국 > 경상도
2013-02-09~2013-02-10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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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둘

 

 

 

 

 

이번 구정은 7번 국도를 이용하여  오며 가며 다녀보기로 하였다. 

가장먼저 여행코스를 넣은건 감포 주상절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경주IC에서 감포쪽으로 가다보니 감은사지를 보게 되었다. 

비슷한 계절에 감은사지를 담아보았기에 그냥 지나칠려는데 길가 고즈늑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석탑은 여행자의 발길을 돌리기 충분하였다. 

 

 

 

 

  

 

  경주는 여행코스가 다양하다. 경주 중심의 불국사권, 남산권, 시내권, 보문관광단지권을 대체로 구경하는데 이쪽 동해권은 불국사를 넘어오면서 시작된다. 

장항사지, 골굴사, 기림사를 구경하고 감은사지, 문무대왕릉과 감포 주상절리까지 동해안풍경을 만낏할 수있는 동해안권은  하루코스로 충분하다. 

 

 

 


 

 

 

 

만파식적의 유래~

주차장입구에는  전에 보이지 않았던 만파식적과 처용이야기가 만화로 알기쉽게 적혀있다. 

 만파식적은 많은 물결도 쉬게하는 피리라는 뜻으로 나라의 근심과 걱정을 해결한다는 신라 전설상의 피리이다. 

만파식적이 대금의 유래라고도 추측하는데   신라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감은사를 짓고 추모하는데 죽어서 용이 된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이 동해의 한섬에 낮에는 둘이되고 밤에는 하나가 되는 대나무를 보내어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그러자 적은 물러가고 병은 낫고 평화가 찾아왔다는 설화이다.  이 설화는 삼국통일후 흩어졌던 민심을 통합하고 정치적 불안을 진정시키는 신라인을의 염원이 담겨있다.  

 

 

 


 

 

 

감은사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예전에는 이곳 대종천까지 동해바다의 물이 넘나들었다. 

대종천은 토함산 동쪽을 감싸고 나온 물줄기와 함월산 기림사쪽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합쳐져 양북면 넓은 들을 지나 대왕암이 있는 동해바다까지 흘러갔다. 

지금은 그 흔적이 미미한 시냇물에 불과하다. 

 

 

 

 

 

 

 

호국의 염원이 담긴 감은사지

삼국유사에 의하면 감은사지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로 보통 소원을 빌기 위한 사찰이라면 이곳 감은사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호국사찰의 개념과  아들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의 극락왕생을 비는 원찰의 개념을 가진 사찰이었다.  사찰은  이곳에서 약 1.6km 떨어진문무왕의 명복을 기원하며 해상의 문무왕릉(대왕암)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 감은사지에는 신문왕 2년에 건립한 3층의 석조쌍탑과 감은사지흔적이 남아있다.

 

 

 


  

 

 

 

 

 

 

 

▲동탑(좌측), 서탑(우측)

 

감은사지 석탑은 동탑(좌측), 서탑(우측)에 나란히 서있는데 신라 사찰의 전형적인 쌍탑 일금당 형식으로 통일 신라인의 기상을 읽을 수있으며 신라 삼층석탑의 원형이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중에서 가장 크다.

 

 

 

 

 

 

 

구정전날이라 그런지 관람객은 보이지 않고 열심히 탑돌이하는 분이 계실뿐~

어쩜 이런날이 감은사지를 가장 잘 감상할 수있는 한적한 날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 동탑

 

 신문왕 2년(682)에 만들어진 석탑은 2단의 기단위에 3층의 몸돌이 놓여 있으며 여러돌을 짜 맞춰서 만들었다. 

 탑의 가장 상단위에는 철침처럽 보이는 찰주가 상륜부를 장식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온전하게 보인다. 

  바닷가가 가까이 있음에도 찰주가 부식되지 않은 것은 그 당시에 철재의 함량과 처리를 높게 하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다. 

또한 1996년 해채복원과정중에  사천왕상이 그려진 외함과 내함, 사리병, 사리기등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으며 진신사리 10과가 나왔는데 문무왕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하고 있다. 

 

 

 

 

    

▲ 서탑 

 

1960년 서탑을 해체하여 수리하던 중 상단에서 유일하게 짜맞춤하지 않은 상륜부 바로 아래 사각 석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다른건 다 조립하였는데  유물을 보관한 네모난 돌탑은 해충과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돌에 홈을 파서 유물을 보관하였다. 

 탑안에서 나온 유물은 현재 경주박물관에 보관중이며 신라 금속공예의 정수를 맛볼 수있는 유물이라고 한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문무왕의 쉼터였던 곳

또하나  감은사지에서 볼거리는 금당터의 지하공간이라고 할 수있다.

신라에서 절터 발굴한  곳중에서 유일하게 법당밑에 지하공간이 있는 사찰로 돌을 가로 세로 이중으로 깔아 그 위에 주춧둘을 세워 건물을 세웠다.

  아마도 금당아래 지하공간은 아들 신문왕이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아버지 문무왕이 쉴수 있게 만든 공간이라고 할 수있다. 

아버지가 드나 들 수있는 통로를 용혈이라고 하며 동쪽과 서쪽에서 발견되었는제 지금은 동쪽에 조금 노출죄어 있다고 한다.

 

 

 

 

 

▲금당터

 

현재 중문터와 회랑터의 남쪽 절반 및 금당터의 대부분은 밭이 되었고 회랑터 북쪽 절반과 강당터에는 민가가 있다.

 

 

 

 


  

▲흩어져있는 석재들
 
입구쪽 터에 누워있는 장대석을 자세히 살펴보면 감은사지라고 적힌 글씨를 발견할 수있으며 잘 살펴보면 태극무늬와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진 것들도 눈에 띈다.
양쪽 석탑을 두고 금당과 강당까지 일직선상에 놓여 있으며 절 마당에 비해 두 탑의 규모로 보아 금당의 규모는 단층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추측한다. 


 

 



 
 



  

 

 

 

 

 

감은사지는 늘 이맘때 찾아와서 늘 마른가지만 담아본것 같다. 

다음에 다시 7번 국도를 따라 여행한다면 초록으로 덮힌 양북면 들녘과 감은사지를 만나고 싶다.

 

 


 

 

감은사지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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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 수학여행만 갔다하면 항상 경주였는데
감은사지는 한번도 가보질 못했네요 ;ㅅ;
주변이 휑해서 그런지.. 먼가 쓸쓸한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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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은 탁 트여서 넘 좋구..
탑이 워낙 잘생겨서 꽉찬 느낌이 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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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때 딱 수학여행이 없어지는 바람에 경주를 못가봤어요ㅠㅠ
다음에 친구들과 가 봐야 겠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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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경주여행, 넘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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