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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토리
2012-07-27
[태국] 방콕 도보여행 :: 왕궁, 국립 박물관, 새벽사원 (왓 아룬) / Vol.02
동남아 > 태국
2011-09-01~2011-10-15
자유여행
0 2 1159
루나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

 

 

왕궁은 덥다

 

"잠깐만, 저쪽이 싸남 루앙(왕의 정원) 아니야?"

 

사원을 나와 왕궁쪽으로 걷다 보니 딱 보기에도 "여기가 싸남 루앙"이라는 삘이 팍~오는 곳이 보인다. 싸남 루앙 즉 왕의 정원이라는 뜻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곳은 정말 왕을 위한 정원. 하지만 현재는 방콕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거대한 공원이다. 미리 알아본 바에 의하면 싸남 루앙을 가로질러가면 왕궁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역시 얘도 너무 커. 도대체 "왕" 또는 "국립"이라는 글자가 붙기만하면 이놈의 나라는 뭐든지 크다. 너무 커서 분명 공원이 눈 앞에 있는건 알 수 있는데 입구를 찾을수가 없어! (커헉) 입구를 못찾는데 어떻게 가로질러 간단 말인가.

 

시계는 이미 정오를 지나고 있고, 머리 위에선 태양이 맹렬한 기세를 뽐내며 무시무시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다행히 가을에 막 접어드는 시기라 열기는 이를 악물면(...) 참을 수 있는데 그래도 한국의 한여름보다 덥다. 거기에 더 무서운건 살을 뚫는 듯한 햇살. 이 햇살 때문에 선글라스 없이는 눈도 못 뜰 지경에 살이 따가워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걷기도 힘든 지경이다. 다행히 한국에서 우산겸 양산을 가져와 쓰고 다녔지만 그래도 온 몸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건 막을 수 없다.

 

이미 두 시간 가량을 국립 박물관에서 소비하며 걸어다닌 우리는 저 넓은 싸남 루앙을 또 헤매며 왕궁을 찾아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맥이 탁 풀렸다.

"어쩌지...? 도대체 입구가 어디지? 우리 지금 왕궁도 아니고 싸남 루앙 입구를 찾아 헤매야 되는거야?" 하며 절망스런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는데 마침 왠 태국 여자 한 명이 지나간다. 사실 길에서 만나는 태국인의 80%는 기본적인 영어도 못하지만 이럴땐 방법이 없다. 되든 안되는 물어보는 수 밖에.

 

"저....혹시 싸남 루앙 입구가 어딘지 아세요?"

"아...싸남 루앙 가세요?"

 

헉....전혀 기대 안했는데 이 여자분 영어를 엄청 잘한다. 역시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어!!

 

"앗...영어를 잘하시네요. 사실 저희가 왕궁을 가는데 싸남 루앙을 가로질러 가면 왕궁이 있다고 해서요."

"음...여기서 싸남 루앙 입구로 가서 왕궁을 또 찾아가는것 보다 싸남 루앙 옆에 탐마쌋 대학을 둘러가면 왕궁으로 바로 연결되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어차피 저도 대학으로 가는 길이거든요."

 

부라보~~ 태국 도착하면서부터 이상하게 운이 좋다 했는데 오늘 운빨 포텐셜 터지는구나!

영어만 잘하는게 아니라 길도 잘 아는 분이야!

 

넘 고마워서 학생이냐고 물었더니 허걱....이 분 탐마쌋 대학 교수님이라시네. (오오)

탐마쌋 대학이 태국의 SKY 중에 하나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젊은 여자분이 교수님이라니. 어쩐지 영어 실력이 장난이 아니더라.

덕분에 젊은 여교수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5분 정도 걷다보니 탐마쌋 대학 입구에 도착했다.

 

"이 길을 따라 그냥 쭈욱 따라가기만 하면 왕궁 입구가 보일거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게 도대체 얼마만큼의 확률일까. 태국에서 길을 물었는데 그 사람이 영어 능통자야. 게다가 길도 잘 알아. 알고보니 대학 교수님이시네? (헉!)

체력은 딸리지만 왠지 느낌이 좋다. 행운이 나를 따라다니는 기분. 이 기세라면 이까짓 더위 쯤 가뿐히 이기고 오늘의 도보 여행을 훌륭히 마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 대~단한 착각 나셨지 말입니다. (후후)

 

왕궁으로 돌아와서.....

드디어 저 앞에 왕궁이 보이고 엄청난 인파가 왕궁으로 들어가고 또 나오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다. 왕궁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이상하게 더 더운 느낌이 든다. "흠...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하며 표를 구입하고 왕궁으로 들어서는데.....이거 장난아니다.

 

왕궁이 끓어오르고 있어!!

 
 
 
 
 

왕궁 입구에서 한 컷

- 쪄 죽겠는데 긴 팔 입은 이유를 아시겠지라...

 

 

왕궁은 끓어오른다

 

태국여행 또는 방콕 여행을 검색했을때 99%의 여행자가 들르는 곳이 바로 이 왕궁이다. 그런데 이 99% 여행자 중 대부분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왕궁은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진짜 덥다."는 말이다.

 

근데 정말 신기하게도 정말 왕궁은 입구부터 끓어오른다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덥다.

아니 이건 단순히 더운게 아니라 사방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가 흡사 사람을 공격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사실 처음엔 잘 몰랐다. 더위에 시달려 몸이 지쳐가면서 점점 더 더위를 느끼는게 아닌가 했으니까. 그런데 왕궁 안을 천천히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자니 다른 관광객의 표정이 보이는데......이럴수가....다둘 유체이탈 중이야! (헉..!!)

 

반쯤은 화려한 왕궁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갔고, 나머지 반은 더위 때문에 맛이 갔다.

다들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데 걸음이 흐느적거려! 웃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다들 "여긴 어디 나는 누구"하는 얼굴로 좀비처럼 돌아다니며 의무적으로 사진 찍기에 열중하는 모습.

 

그 와중에 어디선가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응....? 왕궁에서 싸움이 났나?

 

혼이 나가있던 사람들 눈이 갑자기 생기가 돈다. 훗~ 역시 인간은 다 똑같애.

 

싸움이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 무리의 동양인 그룹이 우루루~ 몰려오는데.....헉....! 알고보니 중국인 단체관광객. 사람들이 싸우는 줄 착각했던 그 소리는 싸우는 소리가 아니라 가이드의 광동어 소리였던 것. 요즘 전세계 관광지에 새로운 메뚜기떼(...)로 각광받는 사람들이 바로 중국인 관광객들. 이제까지는 기껏해야 너댓명의 소규모 그룹만 봤는데 지금 이 팀은 관광버스라도 대절해서 온 모양. 적게 봐도 열댓명은 족히 넘는 중국인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광동어로 한꺼번에 떠들어대는데......이야....그것도 나름 장관이지 말입니다. (후후후)

 

어쨌든 덕분에 멍했던 정신이 확~ 깨며 잠자고 있던 생존본능이 눈을 뜬다.

귀먹지 않으려면 저들을 피해야한다. (쿨럭;;)

 
 
 
 
 
 
 

사진 찍어봐야 이모양

- 왕궁에선 사진 제대로 건지기가 정말 쉽지 않다.

 

 

거의 놨던 정신줄을 다시 다잡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없다. 체력도 없다. 정신줄도 놓기 일보 직전이다. 좁은 공간에 건물들이 워낙 다닥다닥 붙어있다보니 백날 찍어봐야 사진 각도도 제대로 안잡히고, 사람에 치여 제대로 타이밍 잡기도 힘들다. 게다가 더워. 너무 더워. 이건 정말 비인간적으로 덥다. 아무래도 이 건물 이상해. 어떻게 같은 방콕안에서 왕궁만 이렇게 더 더울수가 있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정말 왕궁 자체가 외적인 아름다움에만 치중했을뿐 합리성-더위-라는 면에서는 전혀 고려를 하지 않은 건축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더운 나라에 왕궁을 지으려면 건물간 간격을 좀 더 넓혀야 되는거 아닌까? 아니면 건물과 건물 사이에 그늘이 될 수 있는 나무라던가 아니면 다른 지붕이라도 좀 세워놔야 되는거잖아. 게다가 건물 외벽에 온통 장식해놓은 저 번쩍번쩍하는 유리 장식물이나 황금색 장식물도 그렇다. 보기야 예쁘긴하지만 저런 것들에 태양광이 반사되서 안그래도 더운데 더 덥게 느껴지잖아.

 

아니 이 왕궁에 정말 왕이 살긴 한거야? 도대체 더워서 어떻게 산거지?

멋쟁이는 겨울에 멋부리다 얼어죽는다는데 태국 왕은 여름에 멋부리다 떠죽는건가? (응?)

 

너무 덥다보니 이제 왕궁 건축가와 태국 국왕에게까지 화살이 돌아간다. (드디어 맛이 가고 있군)

 

이런저런 헛소리를 하며 왕궁을 흘러다니다보니 (지도따위 더위 앞에...훗;;) 어느새 에메랄드 사원 (왓 프라깨우) 앞이다.

 

처음엔 에메랄드 사원이라해서 정말 에메랄드로 장식된 사원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사원 안에 거대한 옥 덩어리로 만들어진 불상(프라깨우)이 있는 것.

- 실제로는 에메랄드가 아니라 옥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단지 색이 에메랄드 색이라 이렇게 불린듯.

 

이 불상이 만들어지기는 인도에서 만들어지고 이 후 스리랑카로 전해졌다가 라오스의 불상이 되었는데 몇 백년 전 라오스와 태국과의 전쟁 끝에 태국 국왕이 전리품으로 가져왔고, 그 이 후 줄곧 태국에서 모셔지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라오스 정부는 에메랄드 불상의 반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지만 국력이 깡패인 국제 사회에서 동남아에서도 최하위권 경제 순위인 라오스의 요구를 동남아 최대 부국 중 하나인 태국이 들어줄 리 만무. 여전히 태국 국왕의 비호를 받으며 에메랄드 불상은 태국에서도 중심인 방콕, 방콕 안에서도 국왕의 치하에 있는 왕궁 그리고 그 왕궁 중에서도 가장 심장부에 보관되어 있다.

 

일반인들은 에메랄드 불상이 모셔진 사원 안에는 아예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밖에서 손톱만한 크기로 보이는 에메랄드 불상의 실루엣(...)만 보는 걸로 만족해야하는데 이 날 내 눈앞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바로 요런 에메랄드 불상이 모셔져있다는 말씀

- 이 불상은 국립 박물관에 전시된 불상이다. 아마도 왕궁에 모셔진 불상의 모조품이 아닐까.

 

 

 

갑자기 경찰들이 사원 근처를 둘러싸더니 사원 입구로 들어가는 마당 입구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원래 사원 안에까지는 들어가지 못해도 (사원이 2층 높이에 있음) 그 아래까지는 걸어다니며 구경할 수 있는데 아예 근처도 못가게 막고 있는 것. 그러더니 어떤 한 방향으로 단체로 경례를 하며 엄숙한 분위기를 만드는게 아닌가.

 

응? 뭐지? 누가 오나??

 

관광객들 모두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들이 경례 하는 방향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뭐야....진짜 복터져서 이러다 왕이라도 보는거 아냐?"

 

....하는 택도 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원 안쪽에 왠 젊은 여자가 보인다. 우리는 1층 계단도 못건드리는 에메랄드 사원 안을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까지 묶어놓고 유유히 보고 있는 젊은 여자. 공주인가 싶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영어을 못해! 주위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붙잡고 물어보니 일단 저 여자는 공주가 아니다. 왕의 조카냐...했더니 그것도 아닌것 같다. 뭐냐? 그럼 도대체 저 여자는 지가 뭔데 이 많은 사람들을 다 땡볕에 잡아두고 저 혼자 유유히 통제 구역을 드나드냔 말이다. 공주도 아니고 조카도 아니고 그럼 도대체 뭐여?!

 

결국 경찰에 공무원, 학생들 등등에게 모두 물어본 결과 대충 조합을 해보면 저 젊은 여자는 왕의 저~ 먼 친척 뭐시기의 딸내미 쯤 되는 듯. (헐헐;;)

(사석에선 좀 더 험하게 표현했었다. 왕실 떨거지라고 -_-)

 

보아하니 태국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왕족이니까 뭐....하는 분위기.

외국인들은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다. 왕이 아직도 존재하는 나라 사람들은 태국 사람들과 똑같은 기분일까?

한국인인 난 이 상황이 당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니 지가 뭐라고!! 운 좋아서 왕실 핏줄 타고 났으면 다야? 지가 뭔데 새파랗게 젊은게 이 땡볕에 사람들을 세워놔 세워놓기를!!"

 

이래서 한국에선 조선 왕조 왕실 복원이 불가능하다. 절대 이런 꼴을 용납할 한국 사람들이 아니지 말임다. 궁이 백날 히트쳐봐야 스무 몇 살 왕실 떨거지(...우리 그냥 까놓고 이야기합시다) 아이때문에 8월 땡볕에 광화문 광장 한 복판에서 한 십 분 서있게 하면 아마 사람들 단체로 광화문에 불지를지도. (쿨럭)

 

 
 
 
 
 

드디어 보인다!

새벽사원이다, 새벽사원!!

 

 

새벽사원은 멀다

 

에메랄드 사원까지 보고나니 이제 더 볼게 있어도 볼 기운이 없다. 우리가 오늘 왕궁만 볼 것도 아니고 아직 가야될 곳이 몇 군데나 남지 않았나.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3시 반. 난 수차례의 유체 이탈 끝에 "지금 당장 숙소로 돌아간다해도 후회는 없다"는 마음이었으나 방콕에서의 일정이 짧은 일행은 마음이 급해졌다. 이 친구는 새벽 사원(왓 아룬)을 꼭 봐야한다고 오늘 도보 여행 시작부터 말을 했던 친구다.

그래...다른거 다 뛰어넘고 그냥 새벽 사원으로 바로 가자. 제일 보고싶은거 부터 보고 다른건 다른 날 또 도전해도 늦지 않다. 이렇게 그 친구를 달래며 새벽 사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헬게이트가 열렸다.

 

분명 우리가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왕궁에서 새벽 사원은 걸어서 10분거리라고 했다. 아마 그 이상이었으면 우린 아마 그쯤에서 진작에 도보 여행을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탔거나 아니면 아예 오늘 일정을 왕궁에서 마무리지었을거다. 근데 분명히 10분이라고 했거든. (흑흑)

 

방향은 간단했다. 왕궁에서 왼쪽인가 오른쪽으로 꺾어서 무조건 직진. 쭈~욱 가다보면 선착장이 보이고, 그 선착장에서 강을 건너는 배를 타면 바로 새벽사원이다.

 

좋아. 두 길치가 쉽게 찾을 수 있을만큼 쉬운 길 설명이렸다. 지친 다리를 끌고 터덜터덜 걷는데......강이 안나와. (흑...)

길 양 옆으로 계속 노점상들만 끝도 없이 나오고 강은 커녕 개천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10분은 넘었고, 난 드디어 얇은 샌달덕분에 발목이 나갔는지(...)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나오겠지. 배만 타면 바로 앞에서 내린댔어."

 

근데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 두 사람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 둘 다 말없이 묵묵히 걷고만 있다. 무념무상.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우리는 지금 왜 걷고 있나. 도대체 이 가이드북 적은 사람은 여행자들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이런 잘못된 정보를 적었나. 오늘 나 건드리는 놈은 계탄거다. 한국산 불꽃 싸다구 맛을 보여주지.

 

.....등등의 생각들을 했던것 같기도 하다. (쿨럭;;)

 

그렇게 30여분을 걷다보니 드디어 강이 보이고, 선착장도 보이기 시작한다.

 

만세! 드디어 선착장이다!!!

 
 
 
 
 
 
 

너로 인해 얻은 깨달음이 있었으니 오늘이 헛되지 않았다.

 

 

새벽 사원은 높다

 

배에서 내리자 벌써 시계는 4시가 훌쩍 넘어있다. 사원이 작기는 하나 오후 5시에 입장이 끝나는 터라 시간이 촉박했다. 절뚝거리며 사원 입구에 들어서니 계단이 보이는데......오 마이 갓.....!!

 

이게 무슨 계단이야!! 등산이지!!!!!!!!!

 

계단 하나 달랑 있는 사원인지라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계단이 하나도 아니다!) 이거 계단이 장난이 아니다. 신에게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며 또한 교만해서도 안된다는 가르침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새벽 사원의 계단. 원래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편이 아닌지라 난간을 잡고 아픈 발목을 질질 끌며 기어오르다시피 계단을 올라가니 사원 안쪽은 그저 좁은 난간으로 빙 둘러져있을 뿐이다. 그리고 고개를 드니.....

 

방콕이 내 눈 아래에 펼쳐져있었다.

 

(원래 이쯤에서 방콕 전경 사진이 있어야하나....보조 카메라 메모리 부족으로 이것저것 건들다 새벽 사원 사진을 죄다 날렸다는 슬픈 전설이 있지 말임다. 그래서 보조 카메라로 찍었던 새벽 사원 내부, 전경 사진은 없고 DSLR로 찍은 외부 사진만 올립니다. 흑흑...ㅠ_ㅠ)

 

아...!

 

욕심을 버리면 이런 아름다운 순간을 가질 수 있구나.

 

사실 여행은 욕심을 버리는 끝없는 과정이다. 사람들은 굳이 시간을 쪼개고, 돈을 쪼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을 욕심이 많다 생각하지만 사실 여행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욕심을 버리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단지 "여행"이라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뿐)

 

원래 난 이번에 멕시코로 여행을 갈 생각이었다. 사연은 길지만 결국 경비가 문제가 되었고, 그래서 중미로 가려던 욕심을 버리게 되었다.

그 다음 선택한 곳은 이집트였다. 이집트로 들어가 터키로 아웃하는 육로 루트. 그런데 이번엔 시리아가 문제가 되었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비교적) 안정화가 되었지만 시리아는 아직도 자스민 혁명 중. 이집트만 가기엔 비행기표가 아까워서 결국 4대 문명지 중 한 군데를 가려는 욕심도 버리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이 태국과 캄보디아.

 

여행지(국가)를 선택했다고 욕심을 버리는 과정이 끝나는 건 아니다.

짐을 싸는 것도 욕심을 버리는 과정이다. 욕심같아선 모든 짐을 다 가지고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욕심을 버리고 버려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만 추린다.

생각같아선 하이힐 한 켤레도 가져가고 싶지만 참는다. 생각같아선 원피스도 2벌 더 가져가고 싶지만 역시 참는다. 생각같아선 화장품도 더 챙겨가고 싶지만 참아야한다. 이 욕심 다 부리다간 여행이 고행이 된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다. 왕궁도 보고 싶고, 새벽사원도 보고 싶다.  시끌벅적하다는 차이나타운도 가고 싶고, 그 멋있다는 암파와 수상시장도 가고 싶지만 여행 일정은 빡빡하기만하다. 이럴 땐 욕심을 버리고 내가 가장 가고 싶은 곳, 내가 가장 보고 싶은 곳을 추려야한다.

 

오늘 하루에만도 나는 욕심을 몇 번 버렸나.

도보로 모든 코스를 완주하겠다는 욕심, 더위와 갈증에 지쳐 에어컨 빵빵한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고 싶었던 욕심, 무리를 해서라도 모든 코스를 다 돌아보겠다는 욕심. 그 욕심을 모두 버리고 새벽 사원을 선택해 이 곳에 왔다. 그리고 힘든 계단을 오르고 허리를 편 이 순간 이토록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 나를 맞이한다.

 

짜오프라야 강은 유유히 흐르고,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스친다. 태양이 서서히 질 준비를 하는지 햇살이 조금씩 약해진다.

가만히 서있기만해도 발목이 시큰거렸지만 후회되지 않았다. 오늘 하루동안의 노력이 있어 이 순간이 더 아름답다는 걸 이제는 안다.

도보 코스를 완주하지 못했어도 아쉬움은 없다. 오늘 하루 난 정말 많은 것들을 보았고, 느꼈고, 경험했다. 오늘의 경험이 오롯이 내 피부와 뼈와 심장에 새겨지는 느낌.

 

이것이 여행이다.

 

도전하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느끼지 못할 여행의 순간. 바로 이 순간 여행이 내 곁에 다가왔고, 내 속에 파고들었다.

그렇게 여행을 만났다.

 
 
 
 
 
 
 
 

모두 불태웠어. 하얗게...

 

 

결국 새벽 사원에서 돌아올 때는 만장일치로 택시를 잡았다. (라고 하지만 어차피 일행과 나 두 명이다;;)

자세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심전심이란 이런 것.

 

택시 안에서 괜실히 배실배실 웃음이 터져나왔다.

 

"왕궁에서 새벽사원이 이렇게 먼 줄 알았으면 아마 진작에 새벽 사원은 포기했을거에요."

 

일행이 말했다. 아마도 본인의 주장 때문에 다리까지 절뚝거리며 새벽 사원을 다녀온 나한테 좀 미안했나보다.

 

"맞아, 아마 그랬을거에요. 그래도 새벽 사원 넘 좋았잖아요. 그쵸?"

"네. 정말 좋았어요."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안왔으면 후회했을거라고.

 

여행은 이렇게 에피소드가 남아야 더 재미있고, 더 기억에 남으며, 더 얻는게 많다는게 나의 지론.

 

많은 코스 중 고작 세 군데 밖에 가지 못하고 방콕 도보 여행이 끝나버렸지만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

우린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고, 오늘 하루에 만족한다.

 

그래 그거면 된거다. 나 자신의 만족.

여행을 통해 잊고있었던 "남과의 비교를 통한 만족"이 아닌 "나 자신의 만족"을 찾았으니 오늘 하루도 헛되지 않았다.

 

 

 

 

     - 방콕 도보 여행 Tip -

 

   1. 30세 이상(특히 여성)에 평소 "운동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 하는 분들이란 재고 삼고 해보시길.

       절대 만만치 않더이다. -_-

 

   2. "흥~ 하루에 몇 시간 걷는 것쯤 나한테는 껌이지" 하는 분들도 재고 삼고 해보시길. 방콕의 더위를 물로 봤다간.....훗...

 

   3.  왕궁 주위는 모든 것이 다 비쌈. 심지어 길거리 과일 한 봉지도 40밧 (보통은 10밧 하지라) 씩 받으니 물과 간식은

        미리미리 준비하시길.

 

   4.  왕궁 입장 시 반바지, 민소매는 모두 입장 불가. 왕궁에서 대여도 해주는데, 남들이 이미 입어서

        땀에 쩔은 치마와 웃도리 걸치고 싶으시면 도전해보시던가....(후훗)

 

   5. 신발 밑창이 얇은 신발 (특히 쪼리) 신고 도보 여행에 도전하는건 삼디다스 질질 끌고 지리산 올라가는것 하고

       같지 말임다. 반드시 적절한 신발을 준비해갈 것.

 

   6. 도보 여행을 하다가도 언제든지 체력이 떨어지면 택시를 타는 융통성을 가질 것.

       (괜한 오기로 강행하다 발목이라도 나가면 다음 날 여행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

 

 

 

 
 
 
 
 
 
 
 

왕궁 자체가 헬게이트 오픈과도 같은 의미이긴 했으나 그래도 참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임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해가 너무 뜨거워 모자를 쓰지 않으면 따가워 견딜수가 없을 정도의 더위였다면 상상이 가실려나?

 
 
 
 

어우 더워~ 보기만해도 막 덥네 (파닥파닥)

 
 
 
 

물론 아무리 정줄을 놨어도 이정도 포즈를 잡아줄 정도의 개념은 있다. (훗훗)

 
 
 
 
 

나 이거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건데....

오른쪽 까만 아저씨. 지금 뭐하고 있는건지 누구 아는 사람? -_-;;

(이게 무려 왕궁 벽화입니;;;)

 

 

 

 

 

 

 

 

 

 

※ 사진 출처 : 모두 내가 찍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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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게요~뭐하는거임???ㅋㅋ
방콕 도보여행으로 루나님 많은 사색을 하신듯!!
전 도보여행은 안되겟다는 교훈을 얻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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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의 도보여행은 다 추천해도 방콕 도보여행은 절대 비추합니다.
도보 여행하는 동안의 대부분의 사색은 "어떤 놈이든 걸리면 죽는다~" 뭐 이런거였다는게 좀 문제였다지요.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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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들이 되게 웅장해 보이네요 멋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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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건물은 참 멋있어요. 근데 더워요. 많이 더워요...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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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나름의 낭만이 있겠지만은 방콕에서는 감히 도전할 엄두가 안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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