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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토리
2014-06-01
대구 계산동일대 문화유적지/계산예가, 이상화고택, 서상돈고택
대한민국 > 경상도
2014-04-12~2014-04-12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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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둘

 

대구 계산동일대 문화유적지/계산예가, 이상화고택, 서상돈고택

 

 

 

대구시내 한복판, 계산동과 그 주변은  일제강점기, 8.15 해방을 거치며 대구, 경북의 근대 역사.문화예술의 중심으로 우뚝섰고

계산동 일대 는 한근근대문유적지가 고스란이 잘 보존 되어 있다.

 

 계산성당(사적 제290호), 선교사 스윗즈주택(대구유형문화재 제24호), 선교사 챔니스 주택(대구유형문화재 제25호) ,선교사 블레어주택(대구유형 제26호),

대구 제일교회(대구유형문화재 제30호)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근대문화체험과 계산예가와  서상돈 고택 과 이상화고택을 찾았다.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


 

 

 작년에 왔을때는 보이지 않았던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는

 "도심골목투어" 활성화를 위해 도심의 근대역사문화 시설과 역사를 시청각 자료로 알려주는 곳이다.

 

 

 


 

▲계산동의 어제와 오늘

 

 

계산동은 조선조 대구 읍성 남쪽 성곽을 끼고 형성되었던 자연부락으로 동네에 있던 산 이름 계산을 따서 이름 붙여졌다.

현재 동산병원이 들어 서 있는 동산을 말하며 산 밑으로 옛 신천이 흘렀다.

이곳은 당시 한양을 오가던 길목으로 조선 중기에는 명나라에서 귀화한 장수 두사충 일가의 세거거지였다.

1898년 전후 서양 선교사들이 이 일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곳에는 근대 서양문물이 급속하게 뿌리내렸다.

 

 

 

 

 

▲계산예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정국과 분단 6.25 전쟁을 거치면서 계산동 일대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문인, 화가, 음악인들로 붐비는 문화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시대를 대표할 만한 문예지 간행이나 동인활동, 미술전람회, 음악회도 줄을 이었다.

20세기 후반 급격한 산업화과정을 겪으면서 미처 기록되지 못한 업적이 사라지고 잊혀졌다.

계산예가는 이렇게 묻혀버린 근대 예술인들의 당시 생활공간과 활동상을 찾아 되새길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그림과 사진엽서로 만나는 대구근대 ⓒ 초롱둘

 

 

 


 

계산동과 남성로, 남산동 동산 일대는 20세기 초 한국 근대문화를 이끌었던 예술인들의 삶터와 활동상이 곳곳에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산의 보고이다.

한국 문단의 주류를 이루었던 이상화, 현진건, 백기만, 근대 서양음악과 기틀을 다진 김문보, 박태준, 현제명,

대구 서양미술의 뿌리를 내린 이상정, 박명조, 서동진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 등 거의 이 일대를 중심으로 살았다.

계산성당과 남성정예배당, 그리고 뜻있는 이들이 개설한 학교들은 이 시기 예술인 들이 빛나는 족적을 남긴 요람이며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터전이 되었다.

 


 

▲계산예가, 스탬프로 남기는 근대의 기억 

 

 

 

▼민족저항시인 이상화고택


 
▲이상화고택 

이상화고택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광복을 위해 일제저항 정신의 햇불을 밝힌 시인 이상화 선생의 시향이 남아 있는 곳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오는가" 라는 시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저항시인 이상화 선생은 이곳에서 1939년부터 임종때까지 약 4년동안 거주하였다.

 

 

 

 

 

계산예가와 나란히 이어지면서 담이 허물어져 바로 고택으로 이어진다.

친구들과 제자들을 맞이하였던 사랑방,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었던 감나무마당, 이상화시인이 숨진 안방이 나란히 있다.

마당 에는 시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시인 이상화 시비 ⓒ 초롱둘

 

 

일제하의 민족의 울분과 저항시중에서 "최대의 절약속에 최대의 예술이 있다" 라는 평가를 받는 대표작...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이상화시인은 험난한 근대사 속에서 준열한 자기 비판과 불 같은 저항정신으로 나라를 상실한 망국민 들이 해야 할 책무가 무엇이며

지조와 애국이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이 땅에도 저항문학이 존재했음을 실증하였다.

 

 

 



 
 
이러한 이상화의 울분과 통곡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처럼 서슬 퍼렇던 치하에서도
시인에게, 통곡, 역천, 빼앗긴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해를 먹다 등 보옥처럼 빛나는 저항적 서정시를 가질 수있었다.
 
 
 

 

고택은 이상화 시인이 숨을 거둔 역사적인 장소일뿐 아니라 절필이 된 시 "서러운 해조"를 마지막으로 써낸곳이기도 해서 감회가 더 새로운 곳으로
시인의 숨결을 담고 영원한 한국인 이상화의 드높은 민족정신을 이어받는 문화공간이다.

 

 

 




▼자주자강의 정신을 실천한  서상돈고택


 

 

이상화고택과 나란히 있는 서상돈고택,

당초보다 축소되었다는 고택은 바로옆 대구신성미소시티를 건립하면서 옛집을 허물고 복원한 것이다.

 

 

 

 

 

 

 

천주교 신자였던 서상돈 선생은 천주교 발전에 힘쓰는 한편 독립협회의 회원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일에도 힘썼다.

197년 국권회복운동 차원에서 일본에서 들어온 국채를 국민의 모금으로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전국운동으로 학산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비록 국채보상운동은 결실을 맺지 못한채 끝나고 말았지만 국권회복을 위해

온 국민을 단결시킨 자발적인 사회운동의 모범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이상화, 서상돈고택 관광안내 (053-256-3762)

대구시 중구 계산동2가 84

개관시간: 10~17:3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설(구정)연휴, 추석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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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는저보다 대구더많이가보신듯한 초롱둘님...ㅎㅎ 오히려 여행후기보고 제가 가보고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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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에서 홈스테이 할 수 있는 곳도 있더라구요 ^^ 고건축을 너무 좋아하는 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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