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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토리
2014-09-30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8 - Paul과의 만남, 그리고 봉사활동의 시작.
동남아 > 인도
2011-05-08~2011-06-24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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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공쥬 별

 

머릿속에 온통 꼴까타를 떠나겠다는 마음으로 가득차 점심에 샌드위치 하나를 먹은 후 그닥 하고싶은 게 없어 계속 방에만 누워있었다.

그러다 때마침 전화기 충전이 필요해 숙소 안에서 유일하게 충전이 가능한 1층 마당으로 내려갔다.


마침 1층에 놓여진 유일한 테이블에 외국인 아해들이 도란도란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루종일 누구와도 한 마디 안하고 있었기에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만사가 귀찮아 충전기만 꽂고 방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바로 그를 보게 된다.


외국인 아해들 사이에 앉아 있는 동양인 남자 한 명, 사랑이라는 한글이 등짝에 크게 쓰여있는 티셔츠를 입은 남자.

 

직감적으로 한국인임을 캐취한 나.

반갑고 또 반가워 말을 걸었다.

"한국인이세요?"

그 남자, 깜짝 놀라며 나에게 되묻는다.

"어? 한국인이셨어요?"

"네, 반가워요~~"

이렇게 반가울 수가...

인도에 온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몸과 마음이 힘들긴 힘들었었나 부다. ㅠ.ㅠ

너무나 반가워 통성명을 하고 자리에 합석하게 된 나.

하루동안 참던 말문이 기다렸다는 듯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Paul, 한국계 캐나다인이었다.

어렸을 때 캐나다로 이민 가 현재 세계여행 중 이곳 꼴까타에는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고 했다.

쾌활한 성격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게 된 그와 나.

나에게 꼴까타에 봉사를 하러 온거냐며 묻는다.

"마더 테레사 하우스 봉사? 나..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그곳이 어떤 곳인지 많이 봤지만 용기가 안나서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꼬시기 시작한다.

여기까지 와서 마더 테레사 봉사활동을 안해보면 안된다느니, 단 하루라도 나가보면 보람도 있고 계속 하고 싶어한다느니,

한국 사람들도 많다느니...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난 내일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표를 사놓은 상태라 어쩔 수 없다고.

Paul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티켓은 환불하면 된다고 말하며 내일 같이 봉사활동 하러 가자고 했다.

 

그의 적극성과 강력 추천한 곳의 궁금증으로 결국 기차표를 환불하기로 마음먹고 

결국 티켓을 산 여행사로 돌아가 거금의 패널티를 물고 티켓을 환불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꼴까타에 머물고 있는 한국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한국 사람들이 있긴 있었구나... 거리에서는 단 한 명도 못봤는데 다들 어디에 숨어 있는거야...

그렇게 만나게 된 중국계 캐나다인 여자아해 아이다, 프랑스 남자아해 프랑소와즈, 한국 장기 여행자 명희언니 등등... 

 






아래 사진의 주인공이 Paul. 사진을 찍을 때 늘 이런 표정을 지어서 제대로 된 사진이 한 장도 없다. ㅋㅋ







5년정도 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프랑스 소년(이래뵈도 25살정도의 젊은 총각이다 ;;) 프랑소와즈.




이렇게 친구들을 사귀게 되니 비로소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그리하니 그 끔찍했던 꼴까타가 조금씩 좋아지려 한다.

내일부터 친구들과 함께 할 봉사활동도 혼자가 아니기에 잘 해낼 것 같은 용기도 생기고.  

 

이제 난 더이상 인도에서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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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캐나다에서 온 교포인 그를 만난 건 어쩌면 운명이었으리라.


그토록 끔찍했던 꼴까타가 좋아지고 편안해진 건 그를 만난 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나를 돌아보기까지 해줬으니 인도 여행의 목적은 그를 만난 후 다 이룬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5월15일,


인도에 도착한 지 삼일 째 되던 날, 난 Paul을 따라 마더 테레사하우스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


뭔지 모를 두려움에 빠져있는 모습의 나를 그는 계속 안심시키며 오늘 하루만 일 해보고 앞으로를 결정해도 되니 마음의 부담을 덜으라 말했다.

마더 테레사하우스는 우리가 묵고있는(나는 그당시 Modern Lodge, 그는 그 앞 도미토리 Paragon Hotel에 묵고 있었음) 곳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만약 나 혼자였으면 길도 모르고 인도는 치안도 좋지 않다 여겼으니-뭐, 치안이 좋지 않다는 마음은 며칠 후 부터 싹 사라졌지만 ㅋㅋ-

그곳까지 그 새벽에 절대 걸어가지 않았겠지만 나에겐 든든한 동행자 Paul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 안심을 하고 마더하우스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동이 완전히 트기 전의 인도 거리...


게다가 이곳은 인도에서도 못살기로 유명한 꼴까타...


Sudder St.을 처음으로 벗어나 걷는 인도의 거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기저기 길거리에 천 한 장만 깐채로 온 가족이 누워서 자는 것부터

산처럼 쌓인 쓰레기더미엔 까마귀들이 잔뜩 앉아 있고 거리를 덮은 각종 오물냄새까지...


난 너무나 적나라한 인도를 한 번에 다 봐버린 느낌이었다.

 

복잡한 심경으로 도착한 마더하우스.


그곳에서 매일 열린다는 아침 미사를 드리고(그는 신부님 옆에서 미사를 도와드리는 복사일을 하고 있었다)
봉사자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곳엔 각국의 봉사자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며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ㅎㅎ

 

여기서 봉사자들을 위한 무료 아침식사에 관한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봉사자들이 대기하는 방 한 켠엔 따뜻한 차이티와 바나나, 그리고 식빵이 놓여져 있어 자유로이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수량이 한정되어 있기에 너무 욕심내서 두, 세 개씩 먹으면 초큼 눈치가 보인다. ㅠ.ㅠ

적당히 차이 티 한 잔, 바나나 한 개, 식빵 한 조각을 드시길 권한다.  

 

간단하지만 행복하게 배를 채우고 있으면 수녀님들이 들어오시고 간단한 그날의 오리엔테이션이 열린다.

다같이 기도도 드리고, 그 날이 마지막인 봉사자들에게 노래도 불러주고

(난 이 시간이 제일 감동스러웠다. 그 날이 마지막 봉사인 봉사자들이 다른 봉사자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수고했다는 노래를 받는다.

이 시간에 왠지모를 짠함으로 눈물을 글썽이게 되었다는...)

그리고 그날 새로 봉사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daily pass를 발급해주는 시간을 가지고 

각자 배정받은(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봉사자 자신들이 원한 곳)곳으로 봉사를 떠난다.

 

내가 갔었던 2011년 5월엔 크게 나눠 다섯 군데의 봉사활동지가 있었다.

 

하지만 보통 가는 곳들은 세 군데.


먼저 마더테레사 수녀님이 제일 먼저 만들고 봉사하신 곳으로 유명한 깔리가트.

이곳은 각종 깊은 병으로 죽음에 가까워진 중증의 환자들을 보살피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프렘단.

깔리가트보다는 가벼운 병중의 노인을 보살피는 곳.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좋아한다면 가볼 버려진 장애아이들이 보살핌을 받고 있는 다야단,


이렇게 세 군데로 나뉘어 진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쉽게 정을 잘 주는 아이들의 특성상 다야단은 장기 봉사활동자들만 받고 있다고 하니 참고 바란다.

 

Paul은 이곳에서 벌써 몇 주간 봉사를 했으며 아이들을 좋아해 다야단에서 봉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게 너무 낯설고 어리둥절해 Paul을 따라 다야단에 가고 싶었지만 단기봉사자라는 이유로 프렘단과 깔리가트 중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Paul은 내게 깔리가트보다 비교적 일이 쉬울 프렘단을 추천해 주었고,

그당시 프렘단과 깔리가트가 함께 위치해 있어 그곳들에서 나와 함께 일할 봉사자들과 함께 봉사지로 향했다.  

 






그들을 따라 시장을 지나고, 골목골목을 지나고, 빈민촌을 지나고, 이렇게 기차역도 지나 걷고 또 걷는다.

때마침 우리 곁을 통과하는 기차.







육교 중간에 조그맣게 붙은 초록색 간판, Park Circus. 바로 프렘단이 위치해 있는 역이다.

이 기차역이 보이면 프렘단과 깔리가트에 거의 다 왔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뙤약볕을 20여분 걸으면 도착하는 프렘단과 깔리가트.


원래 이곳엔 프렘단만 위치해 있었는데 두 곳이 깔리가트가 지금 공사중이라 임시로 프렘단과 합쳐졌다 했다.

지금은 아마 공사가 끝나 분리되었겠지.

 


그렇게 시작한 프렘단 봉사활동.

여자와 남자가 분리되어 있어 비교적 부담없이 일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날 Emily라는 스웨덴, 또 한 명의 동명인 프랑스 Emily와 친해졌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될 지 몰라하던 나는 베테랑의 두 여인에게 일을 배우며 봉사의 즐거움을 맛보게 되었다.


일은 누구의 강요도 없으며 만약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른다면

그곳에서 직업으로 일하고 있는 현지인들(우리는 그녀들을 마씨라 부른다)에게 물어보면 해야할 일을 가르쳐 주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찾아서 하는 분위기였다.

단, 의료봉사를 할 수 있는 간호사나 의사인 봉사활동자들은

청소와 빨래를 하는 대신 수녀님들과 함께 아픈 할머니들을 돌며 약을 발라드리고 치료를 도와드릴 수 있다.

(이럴 줄 알았음 어렸을 때 공부나 좀 열심히 해서 의사선생님 될걸... ㅡㅡ;)

 


난 스웨덴 Emily와 비닐(흔히 말하는 레자 ㅋㅋ)침대시트를 닦고 정리하는 일을 했다.

마씨들이 바닥 청소를 하는 동안 우리는 약 80여개의 침대 매트리스를 일일히 물걸레로 앞뒤로 닦고

철제 침대틀을 제자리에 놓고 그 위에 매트리를 다시 얹고 깨끗이 빨아진 천 시트를 하나하나 손수 씌우고 

대소변을 못가리는 할머니들을 위해 비닐 시트를 그 위에 다시 깔고.

 

말로 설명하니 꽤 간단해 보이지만 왠만한 육체노동은 껌일만큼 익숙한 나를 파김치로 만들 정도로 고되었다.

 

육체적인 작업이 다 끝나면(청소, 빨래) 그 다음부터는 할머니들을 도와드릴 차례이다.

봉사자들과 마씨들이 청소와 빨래를 하는 동안 할머니들은 전부 발코니에 앉아계시는데

그동안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들은 대소변을 그대로 옷에 보시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때부턴 자유로이 할머니들을 도와드린다거나 화장실 가는 건 도와드리고,

아니면 자원봉사자들이 기부한 메니큐어를 발라드리며 즐겁게 해드리는 시간이다.


그 후엔 할머니들의 간식시간이 된다. 차이티와 간단한 스낵을 나눠드리고 혼자 못드시는 분들은 먹여드리면 오전 첫 번째 일과가 끝난다.


이 시간이 10:30분 경.


봉사자들에게는 달콤한 휴식시간이다.

약 30분간 봉사자들 모두가 차이티와 쿠키를 나눠먹으며 쉬는 시간인데,

현재 깔리가트와 프렘단이 붙어있는 이유로 마당에 놓인 큰 정자에 깔리가트와 프렘단 봉사자들이 함께 모인다.

서로 오전 내내 있었던 일들도 이야기하고, 맛있는 차이티도 마시며 꿀같은 휴식을 즐긴다.

 

난 이 시간을 즐기며 오전 일과를 떠올려 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율적으로 봉사를 하는 오늘.


난 인도에 무엇을 보고 겪고 느끼러 왔던가.

이런 경험이 과연 이번 인도 여행에서 무엇을 내게 남길까.

단 하루의 봉사가 여기 사람들에게 오히려 짐이되고 상처가 되진 않을까. 

아니, 내가 오늘 하고 있는 이 행동을 감히 봉사라고 말할 수나 있을까.


갑자기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해보라던 Paul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내게 정말 기쁜 마음으로 이 봉사를 추천해 주었고 내가 용기를 내 결심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었다.

만약 조금 더 이 꼴까타에 머물며 봉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맛보게 된다면 이번 인도여행은 성공한 게 아닐까.

 

아니, 앞뒤 다 제치고 나 이 마더테레사 하우스 자원봉사 더 해보고 싶다.

여기에 있는 한 달, 두 달 봉사하는 그 아이들만큼은 못하더라도 단 며칠이라도 이곳에 도움을 주고 싶다.

 


30여분간의 휴식시간이 끝난 후,

난 앞으로의 일정을 결정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점심을 기다리고 있는 프렘단 할머니들에게 향했다.

 

그리고 프렘단에서의 짧은 인연, M 그녀를 만나게 된다.


프렘단에서 처음 일하던 그 날, 난 M이라는 한 여인을 알게 된다. 

(사실 이름을 들었는데 너무 오래되어 잊어버렸다. 무슬라...이런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내 짧은 기억력을 탓하며  앞으로 그녀를 M이라 부르기로 하겠다.)

 

10시 반에 이루어지는 자원봉사자들의 달콤한 휴식이 끝나면 나머지 일과 하나가 남는다.

할머니들께 점심식사를 나누워 드리는 일.

쟁반 하나에 쌀밥과 커리, 그리고 과일 한 조각이 그녀들의 점심 식사였는데

봉사자들은 한 분 한 분께 식사를 손수 나누어 드리고

몸이 너무 불편해 혼자 식사를 할 수 없는 중증의 환자들에겐 봉사자들과 마씨들이 일일히 밥을 떠먹여 드린다.  

 

나는 중증의 환자라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만 하는 M에게 식사를 먹여 주게 되었다.

 

그녀는 40대 정도라 추측되며 어떤 병이 걸렸는지 온몸의 피부가 벗겨져 피부조직이 말라 그녀의 주위에 다 떨어져 있었으며

머리카락도 다 빠져 한 눈에도 중증 환자임을 알 수 있었다.

피부가 다 벗겨져서인지 침대에 옷을 다 벗은 채 얇은 이불 한 장만을 살짝 덮고 정자세로 누워있었으며

온몸이 가려운지 계속 긁적이는 모습에 솔직히 그녀를 처음 본 순간 곁에 가기가 두려워 다른쪽 주위만 돌았었다.

그런데 마침 마씨 한 명이 나에게 밥접시 하나를 주며 M에게 밥을 먹여 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헉... 소심한 나 살짝 마음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바퀴벌레 기어다니는 침대 매트리스를 손으로 닦는 일은 아무렇지도 않아 했으면서

환자에게 밥을 먹여주라는 게 고민이 되다니... 

부끄럽지만 솔직한 이유인 즉슨, 혹시 M의 근처에 가면 혹시나 병이 옮는 건 아닐까 하는 편협한 생각때문이었다.(지금 생각해도 정말 부끄럽다.)


바로 그 때,

M 침대에 옆쪽에 누워있는 또 한명의 중증의 할머니에게 익숙하게 밥을 먹여드리고 있던 프랑스 Emily.

그녀는 여기 프렘단에서 한 달 넘게 봉사하고 있는 그야말로 레알 봉사자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능숙한 모습으로 할머니 곁에 앉아 밥을 먹여드리는 모습에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 모습을 본 후 난 용기를 내 M 옆 가까이 붙어앉아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Hello. How are you today?"

"........."

"Im Evie."

"......... "


아무 대답 없던 그녀, 누워있던 상태로 내가 들고 있는 접시를 힘겹게 들어 밥과 커리를 적당히 비비기 시작한다.


그러니 그녀, 내게 짧게 말한다.

"Rice."

난 그녀의 말대로 비벼진 밥을 떠서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그녀 또 말한다.

"Vegetable."

난 또 커리 옆에 조금 놓인 오이를 잘라 입에 넣어주고.

그녀는 그렇게 자신이 먹고싶은 걸 말하고 난 그대로 입에 넣어주는 방식으로 한 접시를 싹 비운 그녀.

"Water."

그녀의 마지막 말대로 물까지 먹여주니 그녀는 트림 한 번 깊게 하곤 피곤한지 눈을 지긋이 감았다.


꽤나 까다로운 그녀였지만 한 접시 싹 비운 모습을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많이 아픈 거 같이 보이는데 다행히 식사는 잘 하시는구나...

 


그렇게 모두가 식사를 마친 후 봉사자들과 마씨들이 설겆이까지 마치면 오전 일과가 모두 끝난다.

 

난 스웨덴, 프랑스 두 Emily를 따라나가 그녀들과 Park Circus역 지나 큰 길에서 오토릭샤를 잡아 타고 Sudder St.으로 돌아왔다.


그녀들은 내 숙소 맞은 편 숙소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헤어지기 전 내게 점심을 같이 먹자 권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은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들은 블루 스카이라는 식당에 가자고 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간 블루스카이 식당.


안에는 꼴까타에 있는 모든 외국인들이 모여있는 듯 온통 서양애들로 가득했다.

위치가 작은 골목 안쪽이라 지나치며 한 번도 보지 못했었는데 에어컨도 나오는 멀쩡한 식당이었다.


와..... 꼴까타에도 멀쩡한 식당이 있구나...

드디어 앞으로 음식다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ㅎㅎ

 





난 메뉴를 보고 가장 무난해 보이는 샐러드를 주문했다.



무슨 샐러드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샐러드이지만 ㅡㅡ;; 생야채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정말 다행이다. 제대로 된 식당을 발견해서.

 





고된 얼굴이지만 행복한 모습으로 인증샷 하나 남기고.



점심을 먹으며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사귀며 어제까진 상상할 수도 없던 평화로운 오후를 만났다.


게다가 저녁에 내 숙소 옥상에서 맥주마시며 놀자고 약속까지 했다.


알고보니 내 방 앞 넓은 옥상은 봉사활동 하는 아이들의 chill out 장소였던 것이다.

 

저녁 약속을 뒤로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블루 스카이를 나왔다.

몸은 이미 천근만근에 나른함까지 겹쳐 얼른 숙소로 돌아가야 할 듯 싶었다.







아!! 그런데 블루 스카이 앞 거리에 이런 광경이 펼쳐졌다.



염소들이 길 한복판에 떼지어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이국적인 모습에 얼른 카메라를 들었다.

 


아... 여기가 정말 인도가 맞구나.

서양 사람들로 꽉 차 서양에 온 것 같았던 블루스카이였는데 밖으로 나오니 바로 이런 인도적인 풍경.





역시 내가 온 곳은 인도였어.... 하....하.......

 

 

숙소로 돌아가 샤워를 마치고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어느 덧 저녁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씩 옥상으로 모이고 이야기 꽃이 피어났다.

두 Emily들이 알고 있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은근슬쩍 기다리던 Paul까지 왔다. ㅎㅎ

Paul은 굉장히 쾌활하고 유쾌한 성격으로 아이들과 잘 어울렸고 그런 Paul이 은근 멋있게 느껴졌다.

정확히 그게 무슨 마음인지 그 땐 알 수 없었지만.

여하튼 꼴까타에서의 시간을 이렇게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어 준거나 다름없는 Paul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봉사도 앞으로 계속 해야겠다는 다짐까지. ^^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며 놀고 있을 때 즈음 옥상으로 올라온 마커스.

같은 숙소에 머물지만 이틀동안 볼 수 없었던 그를 보자 너무나 반가워 사진을 남겼다.

 






이 아해가 바로 나와 함께 태국에서 함께 넘어온 마커스이다. 





봉사활동의 첫 날은 이렇게 정신없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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