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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토리
2014-11-11
옥천지역 명문가 육영수 생가
대한민국 > 충청도
2014-05-01~2014-05-01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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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둘

 

 

 

옥천여행,

옥천지역 명문가 "육영수 생가"
 

옥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여행지 하면 구읍에 위치한 아마도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이 아닐까?

하지만 요즘에 떠 오르는 여행지중에 하나는 정지용 생가에서 불과 700m 가량 떨어진 육영수여사생가지가 아닐까?

몇년째 늘 갈때 마다 공사중이었는데 작년 5월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는데 특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이후 이곳에 관광객이 3.5배 늘었다고 한다.

 

 

 

 

 

 

 

육영수생가는 조선 후기 지어진 99칸 전통한옥으로 "교동집" 이라 불리며 옥천지역의 명문가이다.

1600년대부터 삼정승(김, 송, 민정승) 이 살었던 집으로 1918년 육여사의 아버지가 매입하여 개축하였다.

1969년 현대식 한옥으로 개축하여 사용되어오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는데 1999년 철거 되었다가 2002년 충남 기념물123호로 지정되어 

 2004년부터 복원공사에 들어가 현재에 이러렀다. 육영수 여사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다.

 

육여사가 머물렀던 안채를 비롯하여 위채,사랑채, 아래채, 연당사랑, 중문채, 연자방아, 곳간채, 아래대문체 등이 복원되었는데

고졸한 옛맛은 느낄수 없지만  생가지에서는 육 여사의 생전모숩이나 과거활동사진들이 액자로 전시되어 있어 옛 기억을 더듬을 수있다. 

 

 




 

▲사랑채

 

역시, 어르신들의 방문이 잇다르고 있는 육영수생가지이다.

도로는 관광버스 몇대가 관광객을 내려놓으니 금방 생가지안에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으로 북적거린다.

대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은 편에 정면3칸의 사랑대청이 돗보이는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는 온돌방의 후면으로 전화방과 암실, 창고 등의 부속공간과 함께 어우러져있는데 과거 박정희 대통령 방문시 임시 집무실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중문채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중문채가 있는데 동네사람 20여명이 앉을 수있는 규모의 방이 있다.

아마도 이 가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나 동네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겨울철에는 새끼를 꼬기도 하던 온돌방이 아니었을까

방문을 열면 바로 앞에 연지가 있어 작은 방이지만 전망하나만큼은 좋은 방이다.

 

 

 



▲연못



▲연당사랑

 

연못의 후면에 있는 연당사랑은 풍류를 즐기기 좋은 정자형식으로 전면에 툇마루가 있으며   교동가옥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소로

겨울에는 바로 앞 연지에서 스케이트를 탓다고 하니 지금에 비해 얼마나 규모가 컸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된다.

 

 

 

 

 

 

 

 

육영수생가지 툇마루와 건물 벽에는 육영수여사 서거후 시인이 된 고 박정희 대통령의 그리움이 가득 베인 시와 당시 활동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몇편의 시를 옮겨보면~~

-붉게 물들은 백일홍이   · 마음의 상처를 달래 주는 듯  ·  한 송이 흰 목련이 봄바람에 지듯이    · 아내만 혼자 가고 나만 남았으니

-우아하고 소담스러운   ·  한 송이 흰 목련이  · 말없이 소리없이 지고 가버리니  · 꽃은 져도 · 향기만은 남아 있도다

-비가 와도 바람 불어도 · 꽃이 피고 꽃이 져도  · 밤이 가고 낮이 와도  · 당신은 아는지 모르는지  · 해가 뜨고 달이 져도  ·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도  

 · 당신은 아는지 모르는지... 화려함과 독재라는 이름 뒤에는   부인에 대한 애닳은 마음을 담는 한 남자를  시인으로 만든것 같다.


 



 

 

 

 


▲안채

 

안채는 조선시대 후기 반가의 전형적인 공간구성을 살펴볼 수있다.

육영수 여사가 태어나 출가하기전까지 생활하였던 곳으로 안방에는 어머니가 동쪽 날개채 안사랑에는 아버지 육종관씨가 거주하였다.

골방 쪽 한사람이 겨우 누울만큼 작은 방이 육영수여사의 방이었는데 책상과 이불채, 미싱이 놓여있다.


 

 


▲육영수여사의 방

 

 

 

 

▲아래채

 

아래채는 "ㄱ "자 구조로 후면에 모두 쪽마루가 놓여있어 조선후기 안채평면유형을 엿볼 수있다.

마치 안채같은 분위기인데 안방과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대청 동쪽에 2칸의 온돌방이  있다.


 

 



▲위채

 

위채는 전형적인 "ㅁ" 자형 구조로 교동 가옥의 가장 후면에 위치하고 있다.

전체모습을 담기 부족할 정도로 아담하게 지어진 공간으로 부엌이 상부에 누다락과 함실부어크 행랑, 식모방이 있다.

 

 





▲위채

 

안채뒷편으로 장독대위에 어느 명문가 고택에서나 볼 수있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사당은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가묘(家廟)라고도 하는데 지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위치에 있으며 바로 옆에 대나무숲이 운치있다.

 

 

 

 

 

 

▲사당에서 내려다보 안채

 

 

 

 

 



▲위채

 

안채 뒤쪽에는 장돗대와 함께 석빙고라고 이름붙여진 음식보관장소가 따로 있어 무척 신기하였다.

이곳은 당속을 광처럼 파고 그위에 시멘트를 덮어 씌웠던 곳으로 입구가 반원형태로 한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크기를 갖고 있다.


 

 

 

 

 

▲연자방아와 뒤주

 

 연자방아는 소나 말의 힘을 이용하여 곡물의 껍데기를 제거하는 일을 하였던 전통적인 농기구로  화강으로 만들어진 원형의 윗돌과

둥글고 판판한 받침돌 그리고 나무로 만들어진 사각구형의 방아를 연결하여 말이나 소가 돌아가면 방아가 찧게 되어 있다.

그 뒤로 보이는건 대형 뒤주로 보통 널판지나 궤짝을 이용하는데 이곳의 뒤즈는 너비 1m50cm, 높이 2 m 40cm 크기로 판벽과 판문으로 이뤄진 구조이다.

정말 대단하다.  연자방아와 뒤주만 보아도  당시 99칸 저택의 규모와 살림살이를 짐작할 수있을것 같다.

 

 





▲차고

 

들어오는 대문 간채 좌측으로 이어진 차고는 육영수 여사의 부친 육종관씨가 자동차에 관심이 있어 자동차가 많지 않던 시절에

이미 외국산 승용차를  소유하였는데 당시 4대의 자동차를 주차하였다고 한다.  옥전지역에서 얼마나 대단한 집안이었는지 알 수있다...






 

 

생가지 뒷편은 약간 높은 언덕지대로 원두막을 지어놓아 방문객의 쉼터가 되게 하였다.

 그옆으로 대숲이 운치있게 자라잡고 있으며 이곳에 서면 육영수생가지의 전체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방문객이 워낙많아 조금 어수선하지만 어르신들은 다리가 불편한지 이곳까지는 올라오지 않아 조금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있다.

국민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영부인으로 살다 운명하신 육영수 여사는 소외되고 고통받는 서민들을 위로하고 실의에 찬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셨다.

그래서 긴 시간이 흘러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찾아오는 곳이 된것 같다.

 

 

 





육영수생가 (043-730-3417) 충북 옥천군 옥천읍 향수길 119

-관람시간 : 09:00~18:0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 추석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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