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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토리
축제 /
2015-04-27
[이탈리아 여행] 로마 바티칸미술관 투어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 2, 라파엘로의 방, 시스티나 성당
유럽 > 이탈리아
2014-10-13~2014-10-30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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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로마 여행 바티칸 미술관은 참 넓고 대단한 작품들이 많은 곳이지요.

정해진 시간 안에 돌아보려면 며칠이 걸린다는 말이 공감갈 정도로

넓기도 넓고 훌륭한 작품들이 정말 많아 가이드 투어가 아니더라도 하루에 돌아보려면 놓칠 작품들이 많을 수밖에 없겠더라는..

그런 바티칸 미술관 투어에서 놓쳐서는 안 될 곳이 바로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 라파엘로의 방 입니다.
그 유명한 아테네학당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 끝으로 갈수록 라파엘로의 방과 시스티나 성당 등 대작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파엘로의 방으로 가는 길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바티칸 중정..

지금은 아스팔트로 구역을 나누어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더라고요.

우측 아랫쪽에 보이는 빨간 자동차가 소방차인데 좁은 바티칸의 골목 어디나 갈 수 있도록 작게 만들어졌다고 하고요.


건물로 둘러싸인 독특한 구조인 이 곳에서 영화 미션임파서블3 촬영이 진행되었다고 하네요.

영화를 찾아봐야겠다 싶은 생각이 불끈.. ㅋ


바티칸 미술관 여행 중 콘스탄티누스의 방, 엘리오도르의 방, 서명의 방, 보르고의 화재의 방 등에서

라파엘로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 교황의 명에 따라 1508년부터 1520년까지 사망할 때까지 그림을 그렸고,

사후 제자들이 4년간 후작업으로 그림을 완성했고 이 방들을 통틀어 라파엘로의 방이라고 한답니다.

라파엘로의 작업실이자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가 있는, 바티칸 미술관에서 인상적인 곳이기도 하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 3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라파엘로는

37세에 요절한 전재 화가로 이른 바 엄친아였다는군요.

가이드 님 설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비교한 이야기였는데요.

두 사람 모두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으로 그림을 그리는 당대의 화가였지만 둘 사이는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해요.

위에서 설명했듯 라파엘로가 미소년 타입으로 잘 생긴 데다가 집안도 좋고 성격도 사교적인 엄친아 스타일이었던 데 반해

미켈란젤로는 얼굴도 못 생기고 성격도 괴팍해 트러블메이커였다는데요.

반면 라파엘로는 37세까지 단명했지만 미켈란젤로는 89세까지 살 정도로 명이 길었다는군요. 

워낙 극명하게 다르고 사람들로부터의 호응도가 달랐던 만큼 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이드님을 따라 라파엘로의 방(Stanza del Raphael)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이 곳이 네 개의 방 중 하나인 콘스탄티누스의 방(Stanza del Constantinus)이에요.

이 방에서는 기독교도들이 이교도들로부터 승리를 거둔 순간과 관련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들어서자 마자 눈에 띈 이 그림은 십자가의 환시(The Vision of the cross) 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막센티우스와 서로마제국의 패권을 놓고 최후의 결정을 벌이는데요.

이 전투 전 날 밤, 콘스탄트누스 대제가 부하들의 방패에 그리스도가 그의 군대를 보호한다는 표식인 X자가 쓰여지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기록에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십자가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데 한 낮에 대제의 군대가 행진할 때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눈 앞에 천국에서 빛나는 승리의 십자가가 밝은 빛을 비추며 떠오르고 이 기호로 승리할 것이라는 음성이 들렸다는군요.

하늘에 떠있는 중앙의 십자가가 눈길을 끄는 이 작품에는 그 당시의 상황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작품의 작가는 Giulio Romano, Giovanni Francesco Penni and Raffaellino del Colle 등 라파엘로의 제자들로

라파엘로는 이 그림의 밑그림만 그리고 나서 사망했고 그 후 이들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십자가의 환시 우측에 걸린 이 작품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일생을 담은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입니다.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는 312년 10월 28일 콘스탄티누스 1세와 막센티우스가 벌인 전투로,

이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승리하며 사두정치체제를 끝내고 로마 제국의 단독 황제로 집권하였고

적장이던 막센티우스는 이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림 가운데 황금갑옷을 입고 왕관을 쓴 채 흰 말을 탄 사람이 콘스탄티누스 대제이고

우측 물 속 가운데 말과 함께 침몰하는 , 왕관을 쓴 사람이 막센티우스라고 하더군요.

십자가의 환시와 마찬가지로 라파엘로가 밑그림만 그리고 사망하였고 이후 제자인 줄리오 로마노가 완성한 작품이라네요.

이 작품은 콘스탄티누스의 세례 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실베스트로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장면인데

정작 콘스탄티누스가 세례 받을 때 실베스트로 교황은 사망한 후였다는군요. ;;


이 작품은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이라는 그림으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황 실베스트로에게 조각상을 바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답니다.

우측 앞에 남장여인이 유독 눈에 띄는데 라파엘로가 그의 작품에 애인을 그려넣곤 했다더군요.

남장여인으로 표현해서 그런가 예쁘장하기 보다는 후덕한 중년 여인처럼 보입니다. ;;

콘스탄티누스의 방 천장을 보면 기독교의 승리를 표현한 프레스코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부숴진 이교도 우상과 십자가의 승리라는 작품으로 1585년 토마소 라우레티가 그린 그림이에요. 

무언가 무시무시하고 단호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로군요. ;;


교황의 알현실이자 교황의 메시지인, 오랜 세월을 거쳐 거둔 기독교의 승리를 담은 엘리오도르의 방(Stanza della Heliodorus) 입니다.

1510년 율리우스 2세가 프랑스를 이탈리아에서 몰아 내려고 일으킨 전쟁에서 패한 후 그를 위로하고자 작업한 방이기도 하다네요.

바로 위의 작품 사원에서 추방 당하는 엘리오도르(The Expulsion of Heliodorus from the Temple)이라는

그림에서 유래해 방의 이름을 엘리오도르의 방이라고 한다는군요.

이 작품은 시리아의 왕 세레우쿠스의 사주로 성전에서 보물을 훔친 엘리오도르가

하나님이 보낸 천사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쫓겨나는 장면을 묘사한 장면으로

프랑스가 이탈리아에서 추방당하는 것을 암시하여 율리우스 2세를 위로하기 위해 그려진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방에서는 사원에서 추방 당하는 엘리오도르보다 더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었는데요.

창문 모양을 따라 양쪽 계단 위로 오르는 구조로 그린 라파엘로의 성 베드로의 해방(The Liberation of St. Peter) 입니다.

그림 가운데 잠들어 있는 베드로를 천사가 이끄는 모습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베드로를 감옥에서 빼내어 인도하는 모습,

왼쪽에는 베드로가 사라진 것에 놀라 허둥지둥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마치 등불이 켜진듯 명암을 이용해 빛을 표현한 작품이 신비롭기까지 하더군요.

이 작품은 창문 때문에 잘린 화면을 이용해 계단과 감옥으로 표현한 자연스러운 구도와

깔끔한 디테일과 인물 배치도 빼어나지만 무엇보다 빛의 묘사로 달빛과 새벽빛, 횃불 등 다양한 빛을 묘사했다는 점인데

그 중 백미는 천사의 몸에서 나오는 빛이라고 할 수 있겠죠.

라파엘로는 베드로의 얼굴에 율리우스 2세를 표현하였고 천사의 빛을 통해 기독교의 궁극적인 승리를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그 작품 아래 창틀 위쪽에 메디치 가문의 문장이 그려져 있네요.


 사원에서 추방 당하는 엘리오도르 맞은 편에는 볼세나의 기적 입니다.

1263년 오르비에토 근처의 볼세나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신부가 성찬의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라는 카톨릭의 교의를 의심하는 발언을 하자 빵에서 피가 흘렀다는 일화를 그려낸 그림이라는군요.


다음은 라파엘로의 방 중 세 번째 방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인 아테네학당이 있는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e) 입니다.

이 방에는 25세 청년이던  라파엘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로부터 명을 받아 신학, 법학, 철학, 시학 등을 주제로 그린

네 개의 프레스코 벽화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 중 라파엘로가 1510년 완성한 아테네학당(School of Athens)는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힐 정도의 걸작입니다.

성베드로 대성당을 닮은 학당에 54명의 철학자와 천문학자, 수학자들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라파엘로의 치밀한 계산 아래 그려진 상상화이지만 규모나 웅장한 느낌, 조화로움 등은 초인간적인 느낌을 주고

마치 무대와 같은 투시도의 공간 안에 인물마다 놀라운 조화를 이룰 뿐 아니라 서로 시각적인 연결을 이루고 있는, 놀라운 작품이랍니다.

1점 소실점에 의한 원근법을 따르고 있어 54명이나 되는 인물이 등장함에도 산만함 없이 집중된 느낌을 주는데요.

라파엘로가 많은 스케치를 준비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고전 건축의 균형감각과 질서, 선명성, 부분과 전체의 조화를

빼어나게 표현한 르네상스 미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고 하네요. 

암브로지아나 미술관에 보관된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최종 밑그림을 보면 그가 피렌체파의 전통을 충실히 따랐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심리 묘사와 미켈란젤로의 육체 표현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암브로지아나 미술관의 밑그림도 궁금해 집니다. ^^


작품 중앙에 위치한 두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철학자들입니다.

좌측, 옆구리에 티마이오스(Timaeus)라고 쓰인 책을 끼고 있는 사람이 플라톤(Platon)으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이데아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랍니다.

라파엘로는 플라톤의 얼굴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얼굴을 표현했다고 하는군요.

좌측에 파란 옷을 입고 손바닥으로 지상을 가리키는 이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입니다.

윤리학(Eticha)이라고 쓰인 책을 허벅지에 받치고 지상을 가리키며 현실 세계를 논하고 있답니다.


플라톤 옆으로 앞머리가 벗겨지고 들창코인 소크라테스(Socrates)가 보이는군요.

진지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무언가를 설파하고 있는데 위 사진 끝에

갑옷을 입고 소크라테스와 시선을 맞춘 이는 그에게 감명받은 알키비아데스(Alcibiades)랍니다.

혹은 알렉산더스 대왕이라고 알려져 있다죠.

그 옆에 빨간 옷을 입고 보자를 쓴 채 심각한 표정으로 소크라테스의 말에 집중한 이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역사가인 크세노폰(Xenophon) 입니다.

바로 옆, 하늘색 망토를 두르고 팔을 괸 채 시선을 위로한 이는

소크라테스의 열혈 제자이자 대화편을 만든 아이스키네스(Aeschines)예요.


소크라테스와 제자들 바로 아래에 흰 옷을 입은 여성이아테네학당에 등장하는 54명의 인물 중

유일한 여성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히파티아(Hypatia) 입니다.

400년 무렵,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된 후 활동하던 히타피아는 최초의 여성 수학자인데

그의 아버지인 테온은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에 주석서를 붙인 인물이래요.

깨인 아버지 덕분에 히타피아는 알렉산드리아에서도 손꼽히는 철학자이자 수학자로 성장했답니다.

사상의 자유를 설파하고 과학과 학습을 형상화한 당시 이교도로서의 전형을 보여준 그녀는

이교도에게 단호한 키릴로스 교주가 취임하면서 핍박을 받게 되었다네요.

결국 415년 수도자 베드로가 이끄는 키릴로스의 무리가 히파티아를 납치해 마구 때린 뒤

머리카락을 마차에 묶은 채 케라레움이라는 교회로 끌고 갔고 그곳에서 옷이 벗겨진 히타피아는

굴껍데기로 피부가 벗겨졌고 피투성이가 된 채 불속에 던져졌다고 합니다.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자유라는 학문의 연료가 사라진 알렉산드리아를 떠나기 시작했고

오래도록 이어져 온 학문의 중심이라는 명성을 다시는 되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편협한 종교의 공격을 받아 피우지 못한 사상과 여성으로서의 자유는 훗날,

근대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가장 아름답고 순결하며 탁월한 지성을 갖춘 여성으로 추앙받았고

페미니스트 철학계에서도 그녀의 이름이 다양한 방식으로 부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그림에서 히파티아의 얼굴은 라파엘로의 애인의 얼굴로 그려넣었다고 하네요.

바로 옆에는 엘라아학파의 시조이자 철학자인 파르메니에스예요.


아리스토텔레스 앞 계단 한복판에는 보라색의 망토를 깔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이 분!

명예와 부를 천시 여기던 자유로운 영혼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 입니다.

그리스 키니코스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가난하지만 부끄러움 없는 자족 생활을 실천한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찾아와 소원을 물으며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하자

내리쬐는 햇볕을 가리지 말고 그 곳에서 비켜서 달라고 하였다는 일화로 유명하기도 하지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내가 왕이 아니엇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

함께 여행한 후배 중 철학을 전공한 후배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라고 설명을 더해 주었답니다. ^^


화면 좌측에 쭈그리고 앉아 책에 무언가 열심히 기록하는 이는 피타고라스(Pythagoras)예요.

수학시간에 배운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한 수학자이지요.

피타고라스 뒤에 초록색 옷을 입고 있는 이는 112세기 스페인에서 활동한 아랍 철학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대가였던 아베로이스(Averroes)랍니다.


피타고라스 바로 옆에는 사색의 즐거움에 깊이 잠긴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대리석 탁자에 기대어 한 손을 괴고 종이 위에 글자를 적고 있군요.

라파엘로의 헤라클레이토스를 표현하며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그려냈다고 하네요.

무엇보다 대리석의 디테일한 무늬를 그려낸 게 참 놀랍습니다.


그림 오른쪽 하단에는 허리를 굽혀 컴퍼스를 돌리고 있는, 기하학의 아버지 유클리드(Euclid).

라파엘로가 건축가 브라만테의 모습을 유클리드에게 그려넣었다고 하네요.

허리를 숙여 머리를 맞대고 도면을 보고 있는 제자와 함께 매우 진지한 모습이로군요.

저 뒤에 빨간 망토를 두르고 흰 수염이 수북한 채 서 있는 철학자는 플로티누스(Plotinus)로

플라톤주의의 창시자이자 빛의 철학자라고 불린답니다.

그림 우측 끝에는 노란 망토를 걸친 채 등을 보이고 지구본을 들고 있는

조로아스터(Zarathushtrua),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짜라투스트라가 있고

그 앞에 별이 반짝이는 천구를 한 손으로 받쳐든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가 있습니다.

그들 우측으로 검은 모자를 쓰고 관객과 시선을 맞추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 라파엘로고요.

라파엘로 옆에는 라파엘로의 스승이자 아폴론과 마르슈아스(루브르미술관 소장) 등을 그린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가 서있습니다.


이 작품은 법학 분야를 담은 세 가지 덕이라는 작품이에요.


세 가지 덕 우측 하단 부분..

교황 그레고리9세의 얼굴은 이 작업을 지시한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얼굴인데요.

그 옆으로 지오반니 데 메디치와 알렉산드로 파르네세가 서있는데

두 사람은 향후 각각 레오 10세와 교황 바오로 3세가 됩니다.

창틀 위에 그려진 이 작품은 예술의 본질과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파르나소스(Parnassus) 입니다.

라파엘로는 창틀 윗부분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영지이자 성스러운 산인 파르나소스 언덕으로 그려내었는데요.
아폴론을 중심으로 시의 여신과 고금의 시인들을 보여주는 무대의 세계를 형상화하였다고 합니다.

비올라를 켜는 아폴론이 중심에 앉아 있고 월계수 좌우에 호메로스, 비르기리우스, 보카치오, 단테 등이 등장합니다.


아테네학당 한 작품에서 역사적인 철학가들을 만나고서 라파엘로의 방 마지막 코스인

보르고의 화재의 방으로 넘어 갔는데요.

아테네학당이 있던 서명의 방에서 넋 놓고 있다가 화재의 방에서 일행을 놓쳐

후다닥 다음 코스로 따라 가느라 서명의 방 성체논의와 화재의 방 사진이 없네요. ;;

이 작품들은 바티칸에서 사온 작품집의 사진으로 기억을 되살려 봅니다.


서명의 방에 있던 라파엘로의 네 개 작품 중 하나인 성체논의(Disputation of Holy Sacrament) 예요.

이 작품 천천히 보다가 화재의 방으로 후다닥 달려갔더랬지요. ^^;;

아래 위 2단으로 구분된 구성이 독특한 이 작품은 하단 중심의 제단 위 성체함이 구도의 초점이 되어

공간의 깊이와 거리감을 확실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천상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그리스도와 천사, 구약성서 속 인물들, 신약성서의 사도, 성인들이 반원형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지상에는 교회의 승리를 상징하는 역사적 인물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요.

성체논의는 신에게 바치는 모든 건축물과 그림 중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교회를 완성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는군요.


라파엘로의 방 마지막 코스인 보르고의 화재의 방 역시 라파엘로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완성된 방이지요.

이 방의 중심은 방 이름으로 정해진 보르고의 화재입니다.

방 좌측 위에 반원형으로 그려져 있는데 보르고라는 마을은 원래 베드로 성당과 테베레강 사이에 있었다고 해요.

지금은 교황청과 라테란 협정을 맺은 무솔리니가 화해의 길을 내기 위해 헐어버렸다고 하고요.

이 그림의 배경은 847년 레오 4세가 테라스에서 자신이 세운 보르고에 화재가 나

보르고 주민들이 공포와 절망에 빠진 모습을 목격한 후 신의 도움을 구한 이야기인데요.

레오 4세가 크게 성호를 긋자 불이 진화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교황이 서있는 곳이 강복회랑이고 그 옆으로 신축하기 전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어

역사적으로 더욱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우측의 그림은 샤를마뉴 대제의 대관식!

799년 교황반대파에 의해 감금되어 있던 레오 3세가 프랑크의 왕인 샤를마뉴의 도움으로 권좌에 복귀하였고

800년에 그를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임명한 뒤 열린 대관식 장면을 그려낸 것이라고 해요.

레오 3세는 레오 10세의 얼굴로, 샤를마뉴 대제는 프랑소아 1세의 모습으로 그려졌답니다.


라파엘로의 방을 나오니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표본이 되었다는 조각상도 눈에 띄고요.

이 길을 따라 바티칸미술관의 하이라이트 시스티나 성당으로 갑니다.


사진 촬영과 작품 설명조차 금지되어 있는 시스티나 성당 역시 작품집의 이미지로 대신할까 해요.

시스티나 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인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있기 때문인데요.


정말 작은 소성당이지만 미켈란젤로의 대표작이 그득한 어마어마한 곳..

작품집 속 사진보다 훨씬 어둡고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섰던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 식스투스 4세가 1473년부터 1481년까지 8년 여에 걸쳐 세운 성당으로

조반니 데돌치가 설계하고 바치오 폰텔리가 건축하였다고 합니다.

수 많은 걸작을 만날 수 있는 바티칸 미술관의 마지막 코스이자 하이라이트이지요.

소성당인 이 곳은 교황을 선출할 때 추기경들이 모여 선거를 치루는 신성한 장소이기도 한데

성모 승천을 기념해 지어진 시스티나 성당의 이름도 교황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성당 입구 정면의 최후의 심판과 천장화인 천지창조가 워낙 유명하지만

성당 좌우의 12개 벽화도 보티첼리, 로셀리, 기를란다이오, 페루지노, 시뇨렐리 등

당대의 대화가들이 모세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생애를 그린 걸작이랍니다.


미켈란젤로가 율리우스 2세의 명을 받고 1508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천장 프레스코화 천지창조 입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작품 전에 미켈란젤로가 프레스코화를 전혀 그려본 적이 없다는 것과

4년간 작품을 가린 채 천장 바로 아래, 좁은 공간에 누워 그림을 그리다가 눈과 몸이 망가져 버렸다는군요.

천장화라서 제대로 볼 수도 없을 것 같은 미세한 곳까지 그림을 그리자

제자가 미켈란젤로에게 그 작은 그림을 누가 알아본다고 그렇게 정성스레 그리냐고 물었다는군요.

그때 미켈란젤로가 대답하기를 "내가 알고 있지 않은가?"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그의 작가정신이 빛나는 일화인 듯 하군요.

천지창조 중 가장 유명한 아담의 창조.

처음 창조되었지만 아직 생명을 얻지 못해 축 늘어진 남자에게 하나님이 팔을 뻗어 손가락 끝을 통해 생명을 불어넣는 순간을 그린 작품으로

이 작품이 시스티나 천장화를 세계 최대, 최고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시켰다고 평가받고 하였답니다.

이 작품 덕분에 시스티나 성당을 둘러보는 관람객들, 목 좀 아프다죠. ㅎㅎ

바티칸 미술관 여행 중 만난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압도적이고 인상에 깊이 남은 작품, 최후의 심판(Last Judgement) 입니다.

바티칸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도 가장 궁금하고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경로를 따라 들어오는 입구가 있는 벽면에 그려져 있더라고요.

고개만 돌리면 보게 될 테지만 그냥 마음이 그래서 천장화인 천지창조를 보고 벽화를 본 다음

작품이 한 눈에 보이는 성당 출구 쪽 중앙에 서서 한참을 바라 보았던 작품이네요.


이 작품은 천장화인 천지창조를 완성한지 22년이 지난 1535년,

교황 클레멘트 7세의 부름을 받은 미켈란젤로가 돌아와 그리기 시작한 작품입니다.

당시 60세이던 미켈란젤로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였다고 하는데

어떻게 13.7x12.2m에 이르는 대작을 이렇게 완벽하게 그려내었는지 그저 놀랍기만 했습니다.

이 작품은 클레멘스 7세의 사망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뒤를 이은 바오로 3세에 의해 1535년 다시 그려지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6년 후인 1541년 가을,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모습을 담은 391명의 인물상이 담긴 완성체가 되었답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안에 세상의 시작과 마지막을 그려낸 순간이지도 하지요.

작품 상단은 천사들의 손에 의해 들어 올려지는 천국이 묘사되어 있고,

중앙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으로 구원과 심판이 그려져 있으며 하단은 뱀을 칭칭 감은 채 끌어내려지는 지옥입니다.


이 작품은 평소 미켈란젤로가 존경했던 단테의 <신곡>의 여행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최후의 심판 속 그리스도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수염도 없이 젊고 당당한 나체의 남성상으로 표현되었는데요.

그리스도의 얼굴은 벨베데레 정원에서 본 아폴로의 얼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고 몸도 정말 좋으시지요? ^^

그리스도 바로 옆에는 지상의 인간들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두 사람 주변을 원형으로 둘러싼 성자들은 천사에 가까운 인물들이며

그 주변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기도 하고 천상으로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1514년 10월 31일, 최후의 심판이 공개되자 교회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작품 속에 그려진 인물들 모두 나체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계속되는 수정 요구에 응하지 않았으나 결국 그가 사망하기 직전인

1564년 1월, 트리엔트공의회에서 반포된 칙령에 따라 수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대가 미켈란젤로의 대작에 함부로 손을 댈만큼 대담한 화가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죠.

수정작업은 결국 교황이 내건 거금의 상금에 눈이 먼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볼테라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럼에도 대작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던 그가 성기 부분에 검은 천으로 덧그림을 그리는 수준에서 마무리하였답니다.

워낙 인물이 많아서인지 볼테라의 의도인지 성모 마리아 옆 쪽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성자만 빼고 말이지요. ^^

이로 인해 볼테라는 죽을 때까지 기저귀 채우는 화가라는 수치스러운 오명을 쓰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한편 최후의 심판 속 나체를 비난하는 데 앞장섰지만 정작 탐욕스럽고 폭력적인 성격으로 부당한 부를 축정하던

당시 교황청 전례 담당관 비아지오 다 체세나(Biagio da Cesena) 추기경은

미켈란젤로에 의해 최후의 심판 속 지옥에 떨어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데요.

 

미켈란젤로가 체세나 추기경을 최후의 심판을 바라보고 우측 하단 구석 불타는 지옥 부분에

당나귀 귀에, 뱀에 감긴 채 성기를 깨물리며 고통 받는 모습으로 그려놓은 것이지요.

지옥에 떨어진 체세나 추기경은 교황 바오로 3세에게 자신의 얼굴을 지워주도록 간청했으나

교황은 "주님은 나에게 하늘과 땅을 다스릴 열쇠만 주셨을뿐,

지옥은 나의 권한 밖이고 구출은 오직 한 분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멋진 답을 했다는군요.  

체세나 추기경 아래 비웃는 악마의 모습이 미켈란젤로의 속마음?!

이 악마는 최후의 심판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랍니다.


젊고 근육질의 몸을 가진 강인한 남성성으로 표현된 그리스도는

무언가 잡으려는 듯 좌측 아래를 향한 왼손으로 부활하는 영혼을 구하라고 지시하고 있고

팔을 들고 있는 오른손으로는 천국으로 넘어오려는 악인을 밀어내라고 지시하고 있다는군요.

그리스도의 왼쪽 아래 그려진, 껍질이 벗겨져 순교한 바르톨로메오는

미켈란젤로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라고 하는데요.

가죽 속에는 자신의 속죄와 순교하는 심정을 담은 것이라고도 하고

오랜 기간 건강을 망쳐가며 완성한 고된 시간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전해진다고 합니다.


그림 하단, 지옥 좌측에는 천사들에 의해 끌어올려지는 약자들의 모습도 그려져 있어요.

미켈란젤로는 단테가 신곡에서 표현한 것처럼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은 천국은 아니지만

림보라는 중간계에서 고통 없이 지낸다고 표현한 부분을 참고해 이 부분을 그렸다고 하네요.

오늘 날 개신교에 의해 이야기되는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대비되는 개념이라 그런지

더욱 성스럽고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정말 압도적이고 웅장하며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막히는 대작이자 걸작인

최후의 심판을 마지막으로 바티칸 미술관 여행을 마무리 하고

이제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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