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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토리
2015-04-27
[나주 여행] 나주향교, 성균관스캔들 촬영지 중 하나!
대한민국 > 전라도
2014-05-22~2014-05-22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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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조카가 다니러 오고, 외국 사는 지인들도 들어오고, 일도 새로 시작하고..

가족과 지인과 함께 했던 여행, 바쁘게 마감해야 했던 일들까지 바빴던 6, 7월을 지나

이제 슬슬 미뤄두었던 여행기를 올리려 합니다. ^^;;

 

다녀온지 벌써 석 달 전인 나주 여행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금성명다원 대표님 인터뷰 때문에 당일로 나주까지 내려가야 했던 날,

인터뷰를 마치고 추가촬영을 위해 강의 준비하시는 대표님을 기다리다가

금성명다원 바로 앞에 위치한 나주 향교를 돌아보게 되었지요.

 


향교를 지었던 12목 중 두 번째로 큰 규모였던 나주에 지어진 터라

규모도 크고 유서도 깊어 나주 여행 때 꼭 둘러보면 좋을 나주향교 입구입니다.



고려 성종 6년인 987년 8월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의 모습은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에 다시 지으며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고 하네요.

 

* 나주향교(羅州鄕校)

 

1985년 2월 25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나주목은 전주부에 이어 호남에서 두 번째 가는 고을이었으므로 향교의 규모도 컸다.

1398년(태조 7)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정확하지 않다. 단지 동재·사마재의 상량문과 문묘 중수 상량문이 있다.

1597년(선조 31) 당시 대성전 수복이었던 김애남이 임진왜란으로 향교가 없어질 위험에 처하자

죽음을 무릅쓰고 위패를 금성산으로 옮겼다가 왜병이 물러간 뒤 다시 안전하게 봉안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나라에서 듣고

그를 위해 사우를 건립하도록 하였다는 내용의 충복사유허비(忠僕祠遺墟碑)가 있다.

현종·숙종 때에도 중수, 중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성전은 이때 중수된 듯하다.

그러나 1900년대에 사마재·수복청·양사재 등이, 1920년대에 서재·충복사가, 1952년에는 동무·서무·동재 등이 헐리게 되었다.

이후 1959년 동재·서재를 중건, 1980년 명륜당과 동·서익당 보수, 1981년 담장 개축, 대성전과 동재·서재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건물 배치는 전묘후학(前墓後學)으로, 앞에 제향을 두는 대성전을 두고 강학을 하는 명륜당을 뒤에 두는 방법이다.

이는 서울의 성균관과 같은 배치법으로 평탄한 대지에 건물을 배치할 때는 이와 같은 법칙을 따랐다.

즉, 강학은 명륜당이라 명명하여 경전학업의 중심으로, 문묘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공자와 중국 및 우리나라의 선현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성전으로

두 부분을 기본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현존하는 향교의 시설물들은 한국의 전통적 공립학교 건축으로 의미가 크다.

향교 앞에는 이 향교를 지킨 김애남을 기리는 충복사유허비가 남아 있고, 박성건의 금성별곡시비가 세워져 있다.

해마다 여름에는 서당이 개설되고 시민들의 전통혼례식장으로도 이용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나주향교 앞에는 작은 공터가 있는데, 향교나 금성명다원 등을 찾는 분들의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는듯 합니다.

저희도 차를 세워놓은 곳인데 주차한 곳 앞에서 넘겨다 본 나주향교 안의 모습이에요.

 


나주향교 입구 옆에는 김애남 충복사유허비와 박성건 금성별곡시비 등이 세워져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제가 넘겨다 본 건물이 굉장히 길고 크네요.

바로 앞에 굴뚝도 세 개나 세워진 것도 보이고요.

이 건물은 명륜당 동쪽에 있다 하여 나주향교 동재라 불리는데,

유생들이 글공부도 하고 유숙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기숙사인 셈이지요.

나주향교 동재의 규모는 다른 향교보다 훨씬 크다고 하더라고요.

 


동재와 굴뚝 사이를 지나 작은 문 안을 들여다 보았어요.



그 문 안에는 충효관이라고 이름 붙여진 최신 건물이 세워져 있었는데요.

이 곳에서 다양한 강의와 행사들이 열린다고 하더군요.



충효관 입구 쪽에서 바라본 동재와 굴뚝의 모습..

예쁜 구조입니다.


 

나주향교의 관리실로 사용되고 있는 동재의 중앙 문 앞에는 넓은 펴앙이 놓여져 있네요.

그 안에서 여러 분들이 이야기도 두런두런, 창도 하시고 계셨답니다.



동재 옆을 지나 나주향교 앞마당으로 들어가 봅니다.


 

나주향교는 전묘후학을 기본으로 해 앞쪽에 제향을 올리는 대성전이, 그 뒤에 명륜당이 있다고 합니다.

일반인이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은 명륜당이 있는 공간이에요.

명륜당은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학 공간으로 일반적으로 큰 도시나 평지에서는 대성전 뒤에 놓인다고 하더라고요.

 

마당 앞에 그려진 건 뭘까요? 설명을 들을 수도, 적혀 있지도 않았으니 중요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궁금하더라는.. ^^;;



입구로 들어서 웅장한 나무를 지나 서재 쪽으로 가봅니다.


문지방이 독특하게 보였던 작은 문을 지나 들어선 서재는

마치 비밀의 정원에 들어선 느낌이었어요.



나주향교와 함께 오래도록 나이를 먹은듯한 울창하고 아늑한 숲이 있는 서재 쪽 후원..



그 앞,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마루가 놓여진 서재는 유생들의 생활관이었다고 하는데요.


이 곳에서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의 촬영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드라마 속에서도 유생들의 숙소로 활용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전주향교도 다녀왔고, 나주향교는 어찌 나오는지 드라마를 다시 봐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ㅎㅎ


조용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던 나주향교 서재의 후원..



서재의 마루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다가 명륜당 쪽으로 걸어가 보니

돌로 쌓은 사각형의 작은 못이 보이더군요.



그 안에 팔뚝만한 크기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어요.

이 못도 나주향교를 만들었던 당시에 만든 것일까요?



서재쪽에서 바라본 명륜당입니다.

정면에서 보는 것보다 넓고 편안한 느낌이었어요.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볼 수 없어 담 너머로 들여다 본 대성전 공간..

대성전 안에는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4성 및 공문 10철, 송조 6현,

그리고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앞쪽 한 칸을 제례에 적합하게 틔어 놓았는데 그 쪽 주춧돌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고 해요.

질박함을 중시하는 유교 건물로서는 꽤 이례적인 사례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사찰의 주춧돌을 가져다 썼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고 하더군요.

아, 들어가 보지 못한 게 그냥마냥 아쉬울 따름..



대성전의 앞 마당은 넓은 공간이었고 큰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대성전이라고 해서 그런가..

뭔가 웅장하면서도 위압적인 느낌이랄까요?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았더랬습니다.


굉장히 오래되고 웅장한 은행나무가 담장을 넘겨보고 있던 나주향교..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전주 못지 않게 예스럽고 조용하던 나주를 기억하게 한 여행지였답니다.

 

나주향교
@ 전라남도 나주시 교동 32-3 | Tel : 061-334-2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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